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힐티)

2월 16일

별관신사 2014. 3. 15. 07:07

신에 대한 신앙을 갖지 않고 오직 자신의 불확실한 힘과 다른 사람들의
기대할 수 없는 도움을 의지하고, 또 세상에서 인생의 낙이라 여겨지는 것만을
낙으로 생각하며, 그 결과 생활이 절반은 공포에서, 절반은 기분 전환과

자기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사람은, 이른바 축복 받은 상황에 있을지라도,
특히 늘그막에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라면 전혀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하다못해 우상이라도 숭배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대의 어느 개혁파의 유태교도가, "유태교의 수많은 계율은 큰 부담이 아닌가,

그것을 얼마쯤은 경감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하고 물으니, 한 사람의 계율파의
유태 교도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답을 주었다. "계율은 확실히 부담이긴 하되,
그러나 그것은 전쟁터에 있는 병사들에게 있어서의 총이나 무거운 탄약상자와

같은 것이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신의 명령은 과연 부담이다.(특히 자기 멋대로 살고 싶어하는 자에게는)
그러나 이부담에는 영과 육에 있어서의 축복이 결부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도 없는 것이며, 보충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신명기 5:28-30, 레위기 18:2-5, 느헤미야 9:29-31, 에스겔 20:11
이것은 특히 장래의 의학이 재차 가르쳐 줄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그 누구도, 비록 최고의 지위에 있는 자라도 일체의 제한과 명령으로부터
해방되어 그저 제멋대로 살수는 없다. 신에게 귀기울여 따르지 않는 자는 대개
그만큼 인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참으로 살아 있는

신앙에는 항상 많은 기쁨이 주어지므로 신의 명령은 가벼운 것이지만, 인간의
명령에는 기쁨이 없으므로 무거운 것이다.
누구든지 성실한 마음으로 해 보면, 이상 말한 것의 옳고 그름을 자신이

시험할 수가 있다. 요한 1서 5:3, 마태복음 11:30.
남에게서 받은 부당한 일을 언제까지나 생각하는 것은 항상 무익하며,
게다가 대개는 해롭다. 그러한 생각은 서둘러 떨쳐 버리고, 그로 인하여 원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정말 정직한 사람이라면 대개 자신이 언제나 가치 이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또 당연히 받아야 할만큼의 고통을 받지 않은 것을 남몰래 고백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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