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입문과 전수
준비 단계의 3과정에 대한 것은 혼자 책을 통해 배우고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때
에 따라 그대에게 적절한 방법을 지도해 주는 영적인 스승이 있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미 체험한 스승에게 배운다면 '자기-없음'에 대한 깨달음에 훨씬 쉽게 도달할 수 있
다.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이미 스승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탄트라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스승을 찾을 필요가 있다. 스승이 없이는 탄
트라 수행이 불가능하다. 변형을 위한 요가 탄트라 수행에서는 영적인 스승과 개인적
인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스승을 선택하는 문제는 여러 문헌에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다 아니
다. 그대는 스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직감으로 그렇게 느낄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아야 한다. 그의 가르
침, 다른 제자들의 질과 성격 등을 엄밀히 관찰하고 검토해야 한다. 어디에선가 결점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럴 땐 상식적인 판단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의 가르침이 애매 모호하고,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전통적인 가르침
과 다르다면 그런 사람을 스승으로 선택해서는 안된다. 입으로는 가르치면서도 행동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제자들을 이용하는 사람, 욕망에 흔
들리는 자제력이 없는 사람도 피해야 한다. 그가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떤 배경을 등에
업고 있든지, 그런 사람을 스승으로 선택하면 안된다.
믿을 만한 스승이라면 가르침이 명쾌해야 한다. 가르침이 전통적인 경전의 가르침
과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자들을 이용
하지 않고 반대로 그들이 필요와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현재 부유하든 가난하
든, 또 유명하든지 유명하지 않든지 간에 부와 명예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 살아가
는 모습이 온건하고 절제되어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스승이다. 거창한
이름도 없고 혈통도 변변치 못하다 할지라도, 또 특별한 맛이 없고 그저 그런 것 같을
지라도 이런 스승이 믿을 만한 스승이다.
일단 그대가 스승을 선택하고 나면, 스승은 그대에게 준비 단계 수행을 명한다. 예
비 수행을 '40만 번' 반복해서 행하라고 하거나, 아니면 그대에게 적합할 듯이 보이는
다른 어떤 수행을 명할 것이다. 어쨌거나 스승이 그대를 제자로 받아들여 수행법을 전
수해 주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요가 탄트라의 만다라에 접근할 길이 없다. 그러기에 스
승과 관계를 맺는 것이 탄트라 수행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는 것이다.
요가 탄트라는 자신의 깨달은 모습과 깨달은 후에 변할 주위 환경을 시각적으로 상
상하는 창조적인 명상에서 출발한다. 수행자는 깨달은 존재와 그의 주위 환경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자신과 세상이 그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이 수행
의 목적은 자기가 앞으로 변할 구체적인 모델을 만드는 데 있다. 무엇을 새로 만들어
내려면 먼저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상상은 이승-중간계의 삶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고유한 자성(自性)이나 고정
불변의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상대적일 뿐이
다. 주관적인 자아도 없고 객관적인 대상도 없다. 상대적인 관계에 따라 지금 이렇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상대적인 관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유동적이며, 그 유동성은
상상의 힘에 의해 변형된다. 따라서 이승-중간계의 모든 현상은 상상의 힘이 만들어 내
는 것이다.
이 세상은 무지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무지한 존재들의 말과 행위 속에 담겨 있는
무의식적인 상상의 힘이 그에 부합하는 이런 모습을 만들어 냈다. 지혜를 통해 깨달음
을 얻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완전한 붓다의 땅으로 변형시킨다. 요가 탄트라 수행자
의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붓다의 땅 만다라를 상상함으로써 온 세상을 붓다의 땅으로
만들고,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이 붓다의 세 몸으로 변형된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실제
로 그렇게 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상상을 통한 변형 수행은 스승에게 입문하면서 시작된다. '바즈라-스승' 즉 다이아
몬드 같은 스승과 관계를 맺기 전에는 탄트라 수행을 시작할 수가 없다. 이 점 때문에
탄트라 수행이 스승의 발 아래 엎드려 그를 예배하는 일종의 '스승 숭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스승은 제자들이 자기 주위에 넋을 잃고 둘러앉아 있는 것을 허용하
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는 스승을 실제 붓다로 보아야 한다. 스승의 육체
를 붓다의 나투는 몸으로 보아야 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붓다의 전형으로 보아야
한다. 스승의 말은 붓다의 깨달은 몸으로 여겨야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다르마의 정수
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스승의 마음을 붓다의 진리의 몸으로 보아야 한다. 스승의 마
음이야말로 온 세상에 두루 깃들어 있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붓다의 진리의 몸이라고
믿어야 한다. 수행자는 스승을 3가지 보물[三寶: 붓다, 진리, 수행자 공동체]이 구체화
된 존재로 보아야만 한다.
수행자는 자신의 불완전한 상상과 생각을 붓다인 스승의 완전한 모습 속에 용해시
킨다. 스승과 융합하는 단계를 거친 수행자는, 스승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수행으로 넘
어간다. 스승은 제자를 붓다로 본다. 스승은 그대 속에 있는 가능성이 이미 실현된 모
습을 본다. 스승의 깨달음과 영적인 시각은 전수 의식을 통해 전달된다. 전수 의식은
다이아몬드 왕관을 쓰고 깨달음의 왕자로 즉위하는 일종의 도유식(塗油式)이다. 전수
받는 제자는 붓다의 장엄한 사자좌(獅子座)에 올라, 상상을 통해 앞으로 도달할 지극한
경지를 미리 맛본다.
탄트라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입문 의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한 번의
의식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는 힘들다. 실제로 만다라 궁전에 들어가서 그 구조, 장
식물, 그 안에 있는 스승 붓다와 수행자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시각화하기 위해서는 고
도로 숙련된 수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행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야만 얼굴과 팔
이 여러 개인 자신의 신적인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만다라는 완전한 우주
다. 일상적인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보 단계의 수행자는 상징이나 이상적인 인
간상을 상상함으로써 만다라 세계를 언뜻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만다라 명상은 특별
히 정해진 사원에서, 그 사원의 구조나 장식물을 상상의 매개체로 하여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탄트라에 입문한 수행자는 수행에 결부된 모든 맹세와 서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지
키도록 애써야 한다. 그를 통해 마음과 몸과 감각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
다. 스승이 아무리 뛰어도 입문자는 자신이 준비한 그릇에 넘치는 것은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의식을 치른 다음, 점점 더 완전한 경지의 깨달음을 전수 받기 위해
용맹 정진해야 한다.
입문-전수 의식은 대단히 복잡하다. 요가 탄트라에서는 4단계로 구분하여 이 의식
을 행한다. 1단계[花甁入門]에서는 몸에 초점을 맞추고, 창조 단계에서 시각화 명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2단계[秘密入門]에서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완성 단계의
출발인 변형 수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3단계[智慧入門]에서는 마음에 초점
을 맞추고, 보다 높은 수준의 완성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마지막 4
단계[大印入門]에서는 몸과 말과 마음 전체에 초점을 맞추고, 완성 단계 최고의 경지인
통합 수준에 이르는 수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티벳 死者의 書>에는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 그리고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로 가득 찬 만다라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만다라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문
의식에 사용되는 기도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히 자
질을 갖춘 스승으로부터 전수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전수
해 주는 스승이 없으면, 그런 기도문을 이 책 저 책에서 찾아내서 달달 외워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의 맨 처음 책인 <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에는 입문 의식에 관련된 내용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아래 인용에서는 입문 의식의 단계 별로 본문의 순서를 조정했다).
흠없이 완전한 연꽃 궁전에서,
스스로 나타나신 신성한 나투는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는 증오심이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나투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마음을 밝히는 투명한 빛을 비추어 주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붓다의 나투는 몸이라고 고백한다. 이 1단계 입문식
[花甁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몸을 상징하는 종자 만트라 OM의 진동과 함께, 스승
의 정수리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백색 다이아몬드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문자의
정수리 의식 센터는 다이아몬드의 백색 광선으로 충만해지고, 창조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순수한 지혜의 기쁨이 충만한 빛의 궁전에서,
죽음을 모르는 깨달은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탐욕과 정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깨달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해탈로 인도하는 내적인 지혜의 기쁨을 채워 주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기쁨으로 충만한 붓다의 깨달은 몸이라고 고백한다.
이 2단계 입문식[秘密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말을 상징하는 종자 만트라 AH의 진
동과 함께, 스승의 목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붉은 색 루비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
문자의 목 의식 센터는 루비의 붉은 색 광선으로 충만해지고, 신비한 에너지 몸을 만드
는 완성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우주 속에 충만한 완전한 진리의 궁전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는 진리의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무지와 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진리의 몸에서 흘러 나오는 완전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하는 근원적인 지혜를 밝혀 주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붓다의 진리의 몸이라고 고백한다. 이 3단계 입문식
[智慧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마음을 상징하는 종자 만트라 HUM의 진동과 함께, 스
승의 심장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푸른색 사파이어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문자의
심장 의식 센터는 사파이어의 푸른 색으로 충만해지고, 투명한 직관의 빛을 체험하는
완성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내면을 관통하는 투명한 빛의 궁전에서,
만물에 고루 축복을 베푸는 세 몸이신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나와 너의 분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세 몸에서 흘러나오는 지극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근원적이 지혜의 세 몸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붓다의 세 몸이 통합된 존재라고 고백한다. 이 4단계
입문식[大印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몸과 말과 마음을 상징하는 만트라 OM AH
HUM의 진동과 함께, 스승의 세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광
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문자의 세 의식 센터는 흰 색, 붉은 색, 푸른 색으로 충만해지고,
투명한 빛과 하나가 되어 완전한 佛性을 성취하는 최고의 완성 단계[마하무드라] 수행
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이 단계에서 스승은 3가지 광선으로 변하여 제자 속에
녹아든다. 그리하여 스승과 제자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 된다.
의식과 잠재의식 차원에서, 자신이 이미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라고 상상하는
것이 입문-전수 의식의 요체다. 이 의식에서는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실현된 것으로 본다. 몸, 말, 마음, 직관 전체가 깨달음으로 충만하다. 현재 상태는
완전한 깨달음과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래도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상상하고
그 모습을 향해 수행을 진전시켜 나간다. 마음 속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현실적으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장애물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 아직 깨달음을 얻기 못했다는 생각은 털 끝 만큼도 하면 안된다. 먼 훗날 깨달
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해서는 안된다. 실제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완전
한 깨달음을 얻은 상태만을 머리 속에 그려야 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결과를 목적지에 이르는 수레로 이용'하는 수행법이다. 외적
인 준비 단계 수행에서는 계율을 지킴으로써 계율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경지에 도달한
다. 하지만 내적인 단계에 들어서면 목표를 이용하여 목표에 도달한다. 목표를 이용하
는 수행자는 현실과 상상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심리적인 중압감과 부조화를 체험한
다.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서는 자기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자신의 모습을 스승처럼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상상하고 믿는 수행을 해
야 한다. 현실과 상상 사이의 긴장은 상상의 승리로 끝난다. 지속적으로 시각화하는 상
상의 힘이 현실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투명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동적인
현상이라는 자각이 깊어지면 이 수행은 쉽게 진전된다.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의 가르침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목표를 수레로 이용하는
수행법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목표를 수레로 이용하는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인식상의 불협화음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편안
한 마음으로 투명한 빛 속에서 쉬라. 그대는 이미 완전한 붓다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고 하자. 그러면 그대는 "아, 그래. 내가 붓다야."하면서 습관적으로 '나'라고 생각하는
에고와 붓다를 동일시한다. 이렇게 되면 깨달음은커녕 에고 의식만 점점 더 강화된다.
그러나 반대로 깨닫지 못한 현재 상태만을 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전
하며, 그대는 완전한 붓다"라는 파드마 삼바바의 말이 잘못 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
래서 그가 가르치는 수행에 대해 냉소적이 된다. 오해에서 비롯되는 이런 두 가지 태도
는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 속에 담겨 있는, 고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탄트라
수행법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만든다.
<티벳 死者의 書>에서 그대가 이미 완전한 상태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 입문-전수
의식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선언되는 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그대가 도
달해야 할 목표지 현실이 아니다. 그대는 그 목표가 이미 이루어진 상황을 늘 마음 속
에 품고, 현실적으로는 그 목표에 이르는 장애물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가야 한다. 도
저히 안된다는 좌절감이 생기는 것은 지나치게 조급하기 때문이다. 좌절감이나 자기
연민의 감정은 빨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나'라고 하는 에고에서 비롯된다. 에고라고
하는 습관의 상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상자에서 벗어나는 만큼 깨달음이 더 밝아진
다. 장애물이 제거될수록 변명과 의심이 사라지고, 에고에 대한 탐닉에서 벗어나 자연
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힘이 커진다. "그대가 완전히 깨달은 붓다'
라는 가르침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에고를 강화시키거나 반대로 좌절감이나 의
심의 수렁에 빠진다면 아예 듣지 못한 것만도 못하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환경에서,
괴로운 몸을 이끌고 귀한 인생을 허비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준비 단계의 3과정에 대한 것은 혼자 책을 통해 배우고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때
에 따라 그대에게 적절한 방법을 지도해 주는 영적인 스승이 있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미 체험한 스승에게 배운다면 '자기-없음'에 대한 깨달음에 훨씬 쉽게 도달할 수 있
다.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이미 스승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탄트라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스승을 찾을 필요가 있다. 스승이 없이는 탄
트라 수행이 불가능하다. 변형을 위한 요가 탄트라 수행에서는 영적인 스승과 개인적
인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스승을 선택하는 문제는 여러 문헌에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다 아니
다. 그대는 스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직감으로 그렇게 느낄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아야 한다. 그의 가르
침, 다른 제자들의 질과 성격 등을 엄밀히 관찰하고 검토해야 한다. 어디에선가 결점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럴 땐 상식적인 판단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의 가르침이 애매 모호하고,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전통적인 가르침
과 다르다면 그런 사람을 스승으로 선택해서는 안된다. 입으로는 가르치면서도 행동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제자들을 이용하는 사람, 욕망에 흔
들리는 자제력이 없는 사람도 피해야 한다. 그가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떤 배경을 등에
업고 있든지, 그런 사람을 스승으로 선택하면 안된다.
믿을 만한 스승이라면 가르침이 명쾌해야 한다. 가르침이 전통적인 경전의 가르침
과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자들을 이용
하지 않고 반대로 그들이 필요와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현재 부유하든 가난하
든, 또 유명하든지 유명하지 않든지 간에 부와 명예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 살아가
는 모습이 온건하고 절제되어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스승이다. 거창한
이름도 없고 혈통도 변변치 못하다 할지라도, 또 특별한 맛이 없고 그저 그런 것 같을
지라도 이런 스승이 믿을 만한 스승이다.
일단 그대가 스승을 선택하고 나면, 스승은 그대에게 준비 단계 수행을 명한다. 예
비 수행을 '40만 번' 반복해서 행하라고 하거나, 아니면 그대에게 적합할 듯이 보이는
다른 어떤 수행을 명할 것이다. 어쨌거나 스승이 그대를 제자로 받아들여 수행법을 전
수해 주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요가 탄트라의 만다라에 접근할 길이 없다. 그러기에 스
승과 관계를 맺는 것이 탄트라 수행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는 것이다.
요가 탄트라는 자신의 깨달은 모습과 깨달은 후에 변할 주위 환경을 시각적으로 상
상하는 창조적인 명상에서 출발한다. 수행자는 깨달은 존재와 그의 주위 환경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자신과 세상이 그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이 수행
의 목적은 자기가 앞으로 변할 구체적인 모델을 만드는 데 있다. 무엇을 새로 만들어
내려면 먼저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상상은 이승-중간계의 삶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고유한 자성(自性)이나 고정
불변의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상대적일 뿐이
다. 주관적인 자아도 없고 객관적인 대상도 없다. 상대적인 관계에 따라 지금 이렇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상대적인 관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유동적이며, 그 유동성은
상상의 힘에 의해 변형된다. 따라서 이승-중간계의 모든 현상은 상상의 힘이 만들어 내
는 것이다.
이 세상은 무지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무지한 존재들의 말과 행위 속에 담겨 있는
무의식적인 상상의 힘이 그에 부합하는 이런 모습을 만들어 냈다. 지혜를 통해 깨달음
을 얻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완전한 붓다의 땅으로 변형시킨다. 요가 탄트라 수행자
의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붓다의 땅 만다라를 상상함으로써 온 세상을 붓다의 땅으로
만들고,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이 붓다의 세 몸으로 변형된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실제
로 그렇게 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상상을 통한 변형 수행은 스승에게 입문하면서 시작된다. '바즈라-스승' 즉 다이아
몬드 같은 스승과 관계를 맺기 전에는 탄트라 수행을 시작할 수가 없다. 이 점 때문에
탄트라 수행이 스승의 발 아래 엎드려 그를 예배하는 일종의 '스승 숭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스승은 제자들이 자기 주위에 넋을 잃고 둘러앉아 있는 것을 허용하
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는 스승을 실제 붓다로 보아야 한다. 스승의 육체
를 붓다의 나투는 몸으로 보아야 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붓다의 전형으로 보아야
한다. 스승의 말은 붓다의 깨달은 몸으로 여겨야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다르마의 정수
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스승의 마음을 붓다의 진리의 몸으로 보아야 한다. 스승의 마
음이야말로 온 세상에 두루 깃들어 있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붓다의 진리의 몸이라고
믿어야 한다. 수행자는 스승을 3가지 보물[三寶: 붓다, 진리, 수행자 공동체]이 구체화
된 존재로 보아야만 한다.
수행자는 자신의 불완전한 상상과 생각을 붓다인 스승의 완전한 모습 속에 용해시
킨다. 스승과 융합하는 단계를 거친 수행자는, 스승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수행으로 넘
어간다. 스승은 제자를 붓다로 본다. 스승은 그대 속에 있는 가능성이 이미 실현된 모
습을 본다. 스승의 깨달음과 영적인 시각은 전수 의식을 통해 전달된다. 전수 의식은
다이아몬드 왕관을 쓰고 깨달음의 왕자로 즉위하는 일종의 도유식(塗油式)이다. 전수
받는 제자는 붓다의 장엄한 사자좌(獅子座)에 올라, 상상을 통해 앞으로 도달할 지극한
경지를 미리 맛본다.
탄트라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입문 의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한 번의
의식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는 힘들다. 실제로 만다라 궁전에 들어가서 그 구조, 장
식물, 그 안에 있는 스승 붓다와 수행자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시각화하기 위해서는 고
도로 숙련된 수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행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야만 얼굴과 팔
이 여러 개인 자신의 신적인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만다라는 완전한 우주
다. 일상적인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보 단계의 수행자는 상징이나 이상적인 인
간상을 상상함으로써 만다라 세계를 언뜻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만다라 명상은 특별
히 정해진 사원에서, 그 사원의 구조나 장식물을 상상의 매개체로 하여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탄트라에 입문한 수행자는 수행에 결부된 모든 맹세와 서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지
키도록 애써야 한다. 그를 통해 마음과 몸과 감각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
다. 스승이 아무리 뛰어도 입문자는 자신이 준비한 그릇에 넘치는 것은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의식을 치른 다음, 점점 더 완전한 경지의 깨달음을 전수 받기 위해
용맹 정진해야 한다.
입문-전수 의식은 대단히 복잡하다. 요가 탄트라에서는 4단계로 구분하여 이 의식
을 행한다. 1단계[花甁入門]에서는 몸에 초점을 맞추고, 창조 단계에서 시각화 명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2단계[秘密入門]에서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완성 단계의
출발인 변형 수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3단계[智慧入門]에서는 마음에 초점
을 맞추고, 보다 높은 수준의 완성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마지막 4
단계[大印入門]에서는 몸과 말과 마음 전체에 초점을 맞추고, 완성 단계 최고의 경지인
통합 수준에 이르는 수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한다.
<티벳 死者의 書>에는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 그리고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로 가득 찬 만다라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만다라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문
의식에 사용되는 기도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히 자
질을 갖춘 스승으로부터 전수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전수
해 주는 스승이 없으면, 그런 기도문을 이 책 저 책에서 찾아내서 달달 외워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의 맨 처음 책인 <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에는 입문 의식에 관련된 내용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아래 인용에서는 입문 의식의 단계 별로 본문의 순서를 조정했다).
흠없이 완전한 연꽃 궁전에서,
스스로 나타나신 신성한 나투는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는 증오심이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나투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마음을 밝히는 투명한 빛을 비추어 주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붓다의 나투는 몸이라고 고백한다. 이 1단계 입문식
[花甁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몸을 상징하는 종자 만트라 OM의 진동과 함께, 스승
의 정수리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백색 다이아몬드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문자의
정수리 의식 센터는 다이아몬드의 백색 광선으로 충만해지고, 창조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순수한 지혜의 기쁨이 충만한 빛의 궁전에서,
죽음을 모르는 깨달은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탐욕과 정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깨달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해탈로 인도하는 내적인 지혜의 기쁨을 채워 주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기쁨으로 충만한 붓다의 깨달은 몸이라고 고백한다.
이 2단계 입문식[秘密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말을 상징하는 종자 만트라 AH의 진
동과 함께, 스승의 목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붉은 색 루비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
문자의 목 의식 센터는 루비의 붉은 색 광선으로 충만해지고, 신비한 에너지 몸을 만드
는 완성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우주 속에 충만한 완전한 진리의 궁전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는 진리의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무지와 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진리의 몸에서 흘러 나오는 완전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하는 근원적인 지혜를 밝혀 주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붓다의 진리의 몸이라고 고백한다. 이 3단계 입문식
[智慧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마음을 상징하는 종자 만트라 HUM의 진동과 함께, 스
승의 심장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푸른색 사파이어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문자의
심장 의식 센터는 사파이어의 푸른 색으로 충만해지고, 투명한 직관의 빛을 체험하는
완성 단계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내면을 관통하는 투명한 빛의 궁전에서,
만물에 고루 축복을 베푸는 세 몸이신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나와 너의 분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세 몸에서 흘러나오는 지극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근원적이 지혜의 세 몸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입문자는 이 기도에서 스승을 붓다의 세 몸이 통합된 존재라고 고백한다. 이 4단계
입문식[大印入門]에서 수행자는 붓다의 몸과 말과 마음을 상징하는 만트라 OM AH
HUM의 진동과 함께, 스승의 세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광
선의 축복을 받는다. 입문자의 세 의식 센터는 흰 색, 붉은 색, 푸른 색으로 충만해지고,
투명한 빛과 하나가 되어 완전한 佛性을 성취하는 최고의 완성 단계[마하무드라] 수행
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된다. 이 단계에서 스승은 3가지 광선으로 변하여 제자 속에
녹아든다. 그리하여 스승과 제자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 된다.
의식과 잠재의식 차원에서, 자신이 이미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라고 상상하는
것이 입문-전수 의식의 요체다. 이 의식에서는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실현된 것으로 본다. 몸, 말, 마음, 직관 전체가 깨달음으로 충만하다. 현재 상태는
완전한 깨달음과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래도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상상하고
그 모습을 향해 수행을 진전시켜 나간다. 마음 속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현실적으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장애물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 아직 깨달음을 얻기 못했다는 생각은 털 끝 만큼도 하면 안된다. 먼 훗날 깨달
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해서는 안된다. 실제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완전
한 깨달음을 얻은 상태만을 머리 속에 그려야 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결과를 목적지에 이르는 수레로 이용'하는 수행법이다. 외적
인 준비 단계 수행에서는 계율을 지킴으로써 계율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경지에 도달한
다. 하지만 내적인 단계에 들어서면 목표를 이용하여 목표에 도달한다. 목표를 이용하
는 수행자는 현실과 상상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심리적인 중압감과 부조화를 체험한
다.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서는 자기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자신의 모습을 스승처럼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상상하고 믿는 수행을 해
야 한다. 현실과 상상 사이의 긴장은 상상의 승리로 끝난다. 지속적으로 시각화하는 상
상의 힘이 현실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투명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동적인
현상이라는 자각이 깊어지면 이 수행은 쉽게 진전된다.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의 가르침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목표를 수레로 이용하는
수행법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목표를 수레로 이용하는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인식상의 불협화음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편안
한 마음으로 투명한 빛 속에서 쉬라. 그대는 이미 완전한 붓다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고 하자. 그러면 그대는 "아, 그래. 내가 붓다야."하면서 습관적으로 '나'라고 생각하는
에고와 붓다를 동일시한다. 이렇게 되면 깨달음은커녕 에고 의식만 점점 더 강화된다.
그러나 반대로 깨닫지 못한 현재 상태만을 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전
하며, 그대는 완전한 붓다"라는 파드마 삼바바의 말이 잘못 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
래서 그가 가르치는 수행에 대해 냉소적이 된다. 오해에서 비롯되는 이런 두 가지 태도
는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 속에 담겨 있는, 고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탄트라
수행법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만든다.
<티벳 死者의 書>에서 그대가 이미 완전한 상태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 입문-전수
의식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선언되는 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그대가 도
달해야 할 목표지 현실이 아니다. 그대는 그 목표가 이미 이루어진 상황을 늘 마음 속
에 품고, 현실적으로는 그 목표에 이르는 장애물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가야 한다. 도
저히 안된다는 좌절감이 생기는 것은 지나치게 조급하기 때문이다. 좌절감이나 자기
연민의 감정은 빨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나'라고 하는 에고에서 비롯된다. 에고라고
하는 습관의 상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상자에서 벗어나는 만큼 깨달음이 더 밝아진
다. 장애물이 제거될수록 변명과 의심이 사라지고, 에고에 대한 탐닉에서 벗어나 자연
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힘이 커진다. "그대가 완전히 깨달은 붓다'
라는 가르침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에고를 강화시키거나 반대로 좌절감이나 의
심의 수렁에 빠진다면 아예 듣지 못한 것만도 못하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환경에서,
괴로운 몸을 이끌고 귀한 인생을 허비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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