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힐티)

4월 4일

별관신사 2014. 4. 5. 05:43

신앙의 일시적인 동요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곧 신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을 통해서
경험을 쌓는 동안에 신앙이 차츰 일종의 지식으로 된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정당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고 그리고
본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저 교묘하게 만든 이야기를 좇지는 않았다"
(베드로 후서 1:16참조)

현대에 있어서도 모든 복음 설교자는 자신에 대하여 이와 똑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없는 한 그의 설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바그너의 아름다운 오페라로 해서 우리에게 한층 친밀해지게 된 로엔그린의

전설은 이런 점에서 사람을 잘 설득시키는 바가 있다. 즉, 무릇 인류의
참 구세주는 그 독자적인 정신적 본질을 갖추고 미지의 세계로부터 찾아온다.
따라서 많건 적건간에 어딘지 이상한 데가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어둠과 고통> 속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빛과 기쁨>으로부터
찾아오는 것이다. 사람은 그 빛과 기쁨에 접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구세주
자신이 그와 같은 새로운 삶에 깊이 통하고 있음을 틀림없이 느낄 것이다.

오늘날의 예언자에게서 보듯이, 인간의 비참에 대한 단순한 탄식의 노래나
서술, 혹은 자연과학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극히 빈약한 비판은
사람들에게 전혀 감명을 줄 수가 없으며. 애당초 예언자의 이름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6일  (0) 2014.04.06
4월 5일  (0) 2014.04.06
4월 3일  (0) 2014.04.05
4월 2일  (0) 2014.04.05
4월 1일  (0) 201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