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일생의 역정은 실은 커다란 환상에 불과하다. 그 매끈한 표면 밑에
숨겨진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며, 또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따금
이 겉 껍질에 갑자기 틈이 생겨, 신이 보시는 대로의 내부의 실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사람의 판단이나, 그리고 전기 등은 겨우 절반밖에
진실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마저도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는 하나 인간적 공정조차도, 19세기 문명의 성과를 일방적으로
찬미한 반동으로서 생긴 저 정치적 염세주의의 영향 아래 그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우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널리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 죽고 난 후에 곧 그 사람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평가는,
결코 전설 따위는 아니며, 대체적으로 바른 의견으로서, 설사 즉시 소리 높이
훤 전되지는 않을지라도 언제까지나 길이 존속되는 것이다.
악한 인간이면서도 길이 명성을 유지했다는 예를, 적어도 나는 역사상
단 하나도 생각해낼수가 없다. 그와 반대의 경우쪽이 많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무엇보다도 먼저 선한 인간도 역시 왕왕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중대한 과오를 범하기 쉽다는 것에 입각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역시 그 사람들의
근본적 성질이 선한 것이라면 그와 같은 과오도 특별히 용서받는 것이다. 이른바
교부들로부터 종교개혁자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거의 모든 유명한 교사들이
그 좋은 실례이다. 비스마르크나 괴테나 프리드리히 대왕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로써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가슴 속에는 정의를 향한 깊은 요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요구는 참으로 실재하고 있으며, 또 우리가
생사를 걸고 신뢰하는 신의 그 정의의 여운이며, 그 작용인 것이다. 잠언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