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기독교에 불과한 것을 <신비주의>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신앙을 구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또 그에 대한 감수성을 가졌느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을 만한 완전히 <합리적>인 기독교
운운하는 것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와 같은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어떠한 시도도 끝이 없는 것으로서, 마침내는 반드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완전한 불신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랐던 기독교의 독특한 점은, 무엇보다도 일체의 광신을
배제한 아주 명료하고 냉정한 양식과, 다음으로 초감각적인 것,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이것을 신비주의라 부르고 싶거든 불러도 되지만, 이 호칭은 반드시 적당한
것은 아니다)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섬세한 마음, 이 두 가지의 결합이다.
이 결합의 여하에 따라 자연 많은 사도가 생기고, 그 하나 하나가 더 계속
나아간다면, 그리스도가 바랐던 기독교와는 전혀 반대의 것으로 빠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만일 우리가 한편으로는 아주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명백한
실례를 눈앞에 가지지 못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진실성을 많은 독자도 스스로
경험했으리라 생각되는, 구약에서 유래된 신의 확약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언제나 좁고도 바른 길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출애굽기 23:20-22 여호수아 21:45 동포교회 찬미가 39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