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내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데는 항상 세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는 열광으로, 마치 마른 섶을 태우듯이 기세있게 활활 소리내며 높이
타오르는 불꽃이다. 둘째 단계는, 이 활활 타던 불이 어느 정도 꺼져가는
상태로, 조금 전까지도 불꽃 그것이었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세째 단계는, 언제까지고 계속 타는 숯불이, 꾸준히
따뜻함을 주변에 풍기는, 조용하고 변함없는 상태이다. 거기에는 이미 사소한
동요도 변화도 없으나, 그 포근한 효과는 누구에게도 명백하다.
인간의 정신이 뭔가 중대한 문제로 이 마지막 단계까지 도달한다면, 그것은
안으로는 평화이며 밖으로는 힘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그 활동적인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갠브리의 쟌 마리는 신을 향한 인간 영혼의 첫 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혼이 그 타고난 대로의 본성을 극복하고 야비한
경향이나 욕망을 거부했을 때에 서광이 나타나서 영혼을 비춘다. 신의 은총은
신의 성스런 뜻에 따라서 그 영혼의 모든 행위를 인도하신다. 완성의 이 첫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영혼은 완전히 자기를 버리고 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에
동의한다. 그 때 신이 그 영혼의 소원이나 생각이나 사랑의 유일한 대상이
된다. 이제 영혼은 선덕의 꽃이 만발하는 화원이 되고, 그들 선덕이 영혼을
곱게 장식하며, 이 세상 것이 아닌 빛을 그 위에 뿌린다. 주는 영혼과 아주
가까이 하시어, 마치 영혼이 주와 하나로 된 듯이 보인다. 아, 사람들이 만일
이것은 은총을 마음에 붙잡을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이것은 즐거움을
부여받기 위해 무수한 세계를 버릴 것이다."
이 말은 완전한 진실로서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영혼의 즐거움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더욱 향상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또
다른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말했듯이, 우리가 이기심이나 호기심에서
이같은 지상의 낙원(그도 그럴것이, 그것은 일종의 낙원이니까)을 구하는
것을 신은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낙원이 있다고 전혀 믿지도 않는 곳에 그것을 추구하여 재차 이기주의에
속아넘어간다. 현대에 있어서도 많은 종파 창시자들의 전기에 이 사실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