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德之容, 惟道是從.
대덕(大德)의 양상은 도를 따라서 변한다.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도라고 하는 것은 오직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황홀하면서도 그 안에 형상이 있고,
황홀하면서도 그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유현(幽玄)하고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생명의 본질인 정령이 있고,
그 정령은 심히 진실하고 그 속에 신험(信驗)이 나타난다.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예로부터 오늘까지 여전히 도라고 부르며, 만물의 근원을 총체적으로 통솔한다.
우리가 무엇으로 만물의 근원의 실상을 알 수가 있겠느냐?
바로 도를 통해서 알 수가 있느니라.
우주천지간에 있는 삼라만상은 결국은 보이지 않는
도가 현현(顯現)하고 작용하는 것이다. 도는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만상이 있고 만물이 있고 또 신비로운
도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정기(精氣)나 정령이
솟아나온다. 도는 바로 만물의 근원을 총체적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여기서 도와 덕의 관계를 추려보겠다.
(가) 도는 무형적 실재다. 그러나 도는 반드시 유형적으로
작용하고 나타나고 효능을 발휘한다. 그 나타난 것이 바로 덕이다.
(나) 모든 만물은 도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또
살 수도 있다. 따라서 도는 만물을 통해서 여러 가지
속성을 나타낸다. 도의 속성의 표현도 말하자면
덕이다. 꽃은 꽃의 속성이 있고, 물은 물의 속성이
있다. 이것은 도가 그런 속성을 준 결과다.
따라서 만물의 속성도 말하자면 덕이다.
(다) 인간의 경우 덕이 있다 없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도를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여 그 좋은 결과나
열매를 얻었냐 못얻었냐 하는 뜻과 같다. 도는
전체적 입장에 서서 만물이 조화 속에 창조되고 발전하는
원리라 하겠다. 따라서 인간의 덕이 크다 작다 하는 것도
얼마나 전체적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체를
버리고 오직 나의 욕심, 정신을 버리고 오직 물질만을
쫓고, 또 영원한 시간을 망각하고 오직 현세나 순간만을
위해 행동하면 그는 소인이고 그이 덕은 아주 작거나
때로는 패덕(悖德)이 되고 만다.
이러한 도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도 같다.
대덕(大德)의 양상은 도를 따라서 변한다.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도라고 하는 것은 오직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황홀하면서도 그 안에 형상이 있고,
황홀하면서도 그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유현(幽玄)하고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생명의 본질인 정령이 있고,
그 정령은 심히 진실하고 그 속에 신험(信驗)이 나타난다.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예로부터 오늘까지 여전히 도라고 부르며, 만물의 근원을 총체적으로 통솔한다.
우리가 무엇으로 만물의 근원의 실상을 알 수가 있겠느냐?
바로 도를 통해서 알 수가 있느니라.
우주천지간에 있는 삼라만상은 결국은 보이지 않는
도가 현현(顯現)하고 작용하는 것이다. 도는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만상이 있고 만물이 있고 또 신비로운
도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정기(精氣)나 정령이
솟아나온다. 도는 바로 만물의 근원을 총체적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여기서 도와 덕의 관계를 추려보겠다.
(가) 도는 무형적 실재다. 그러나 도는 반드시 유형적으로
작용하고 나타나고 효능을 발휘한다. 그 나타난 것이 바로 덕이다.
(나) 모든 만물은 도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또
살 수도 있다. 따라서 도는 만물을 통해서 여러 가지
속성을 나타낸다. 도의 속성의 표현도 말하자면
덕이다. 꽃은 꽃의 속성이 있고, 물은 물의 속성이
있다. 이것은 도가 그런 속성을 준 결과다.
따라서 만물의 속성도 말하자면 덕이다.
(다) 인간의 경우 덕이 있다 없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도를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여 그 좋은 결과나
열매를 얻었냐 못얻었냐 하는 뜻과 같다. 도는
전체적 입장에 서서 만물이 조화 속에 창조되고 발전하는
원리라 하겠다. 따라서 인간의 덕이 크다 작다 하는 것도
얼마나 전체적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체를
버리고 오직 나의 욕심, 정신을 버리고 오직 물질만을
쫓고, 또 영원한 시간을 망각하고 오직 현세나 순간만을
위해 행동하면 그는 소인이고 그이 덕은 아주 작거나
때로는 패덕(悖德)이 되고 만다.
이러한 도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