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안선 숲의 윤곽 지평선 바위나
피부 등과 같은 자연의 선을 따르거나 또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의 선(관념이나 개념들)
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과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우주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류하고 범주를 나눈다.
우리는 안과 밖 바위와 바위 아닌 것 줄거운
것과 즐거움이 아닌 것 큰것과 큰것이 아닌것
좋은 것과 좋은것이 아닌 것의 차이점을
인식하도록 배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선은 경계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양극의 차이는 명백하게 드러남
으로써 쉽게 인식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일체성은 망각하기 십상이다.이런 오류는
우리가 그 범주의 안과 밖에다 이름을 붙이고
단어나 상징을 부여해 감에 따라 가중된다.
왜냐하면 동일한 범주의 안쪽에 적용하는 빛
위 즐거움과 같은 단어는 그 바깥에 적용되는
어둠 아래 고통과 같은 단어와 전적으로
단절되고 분리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불가분의 대극의 상징물을
서로 떼어놓고 주무를 수 있게 된다.
나는 줄거움을 원한다.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장에는 즐거움의 필수적인 대극인
고퉁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현실세계에서는
어느 극도 상대극과 분리될 수 없지만
단어로써의 즐거움과 고통은 서로 분리될 수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즐거움과 고통사이의
선은 경계가 되고 그들이 서로 별개라는
환상이 설득력을 얻는다.
캔 월버의 무경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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