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강좌

경계라는 환상.

별관신사 2020. 10. 23. 05:07

우리는 해안선 숲의 윤곽 지평선 바위나

피부 등과 같은 자연의 선을 따르거나 또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의 선(관념이나 개념들)

 

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과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우주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류하고 범주를 나눈다.

 

우리는 안과 밖 바위와 바위 아닌 것 줄거운

것과 즐거움이 아닌 것 큰것과 큰것이 아닌것

좋은 것과 좋은것이 아닌 것의 차이점을

 

인식하도록 배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선은 경계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양극의 차이는 명백하게 드러남

 

으로써 쉽게 인식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일체성은 망각하기 십상이다.이런 오류는

우리가 그 범주의 안과 밖에다 이름을 붙이고

 

단어나 상징을 부여해 감에 따라 가중된다.

왜냐하면 동일한 범주의 안쪽에 적용하는 빛

위 즐거움과 같은 단어는 그 바깥에 적용되는

 

어둠 아래 고통과 같은 단어와 전적으로

단절되고 분리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불가분의 대극의 상징물을

 

서로 떼어놓고 주무를 수 있게 된다.

나는 줄거움을 원한다.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장에는 즐거움의 필수적인 대극인

 

고퉁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현실세계에서는

어느 극도 상대극과 분리될 수 없지만

단어로써의 즐거움과 고통은 서로 분리될 수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즐거움과 고통사이의

선은 경계가 되고 그들이 서로 별개라는

환상이 설득력을 얻는다.

 

                      캔 월버의 무경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