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이야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에이도스라고 불렀다.

별관신사 2012. 11. 3. 01:58

플라톤에게 있어 칼리아스와 소크라테스라는 개체들의 본질을 결국 인간
이였다. 플라톤에게는 개체의 고유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였던
셈이다. 반면 경험세계를 강조했던 아리스토 텔레스에 있어 칼리아스의

본질과 소크라테스의 본질은 서로 다른 것이였다. 플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플라톤에게는 모든 인간들이
인간이라는 하나의 본질을 공유한 것으로 사유되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사람 모두 본질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서양 철학은 니체 혹은 비트겐슈타인의 등장 이후에야 사물의 본질이란 단지
우리 인간의 투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동양의 사유 전통에서는 본질이란 것이 하나의
언어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통찰이 2천여년 전부터 이미 상식적인 견해의
하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과거 동양 철학자들이 본질이란 것이

얼마만큼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지 이미 성찰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자신이 사물들에 본질을 부여 했다는 것을 망각하고 인간의 무관한
절대적인 본질이 있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것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중국의 장자나 인도의 나가르쥬나 가 서양 철학자들 가운데
니체 혹은 비트겐슈타인과 비교되곤 했던것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