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 자신의 사고 작용을 관찰하는 것,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다만 관찰하는 것,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반작용이 어디로부터 솟아나는가를 관찰하는 일은 정말 엄청나게
흥미 있다. 분명히 기억으로부터 솟아난다. 도대체 처음이 있는가? 만일 있다면, 우리는 그
처음을 발견할 수 있는가-즉 그 처음이란 기억의 처음을 말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생각도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이 유지되고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쾌락에 연속성을 주는가에 대해 알았고 또 어떻게 생각이 쾌락의 반대, 즉
공포와 고통도 유지하는지를 알았으며, 그래서, 경험자-즉 사고자-가 쾌락이고 고통이며, 또한
쾌락과 고통에게 자양을 공급하는 실체라는 걸 알았다. 사고자가 쾌락을 고통으로부터
분리한다. 그는 쾌락을 위한 요구 바로 그것 속에 그가 고통과 공포를 초래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생각은 항상 쾌락을 요구하는데, 생각은 이 쾌락을 충성, 도움, 줌,
유지, 봉사 등의 다른 말들로 덮어 싼다. 왜 우리는 봉사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주유소는
훌륭한 봉사를 한다. 돕고, 주고, 봉사한다는 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모두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빛과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찬 꽃이 <나는 주고, 돕고, 봉사한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땅을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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