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古文眞寶)

비파행 . 백거이.

별관신사 2015. 10. 30. 01:18

심양강 가에서 밤에 손님을 전송하였는데

단풍잎 갈대꽃 위에 가을바람 쓸쓸하였네

주인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에타는데

술잔 들어 마시려도 악기 반주도 없어

취하여도 기뻐히지 않아 서글프게 작별하였는데

작별할 때 아득한 강물에는 달빛만 젖어 있었네

그때문득 물위에 퍼지는 비파소리 듣고

주인은 돌아갈 길 잊고 손님은 떠나갈 것 잊었네

소리찿아가 은근히 타는 분누구인지 물으니

비파소리 멈추고도 말은 머뭇거리기만 하네

배 옮겨 가까이 가 불러내어 만나고자 하여

술 다시 따르고 등불 다시밝힌 다음 다시잔치 벌였네.


여러번 부른뒤에야 비로소 나왔는데

여전히 비파를 안고 얼굴 반쯤 가렸었네

비파의 끝 조리개 돌려 줄 조이고 디덩덩 줄을 뜯어 보는데

곡조를 이루기도 전에 먼져 정이 실려 있네

줄줄마다 마음 억누르지만 소리마다 슬픔 실려

평생의 불우한 정을 호소하는 것만 같았네

눈 내리깔고 손 가는대로연이어 뜯는데

마음속의 무한한 일들을 다 말해주는 듯 하였네

왼손가락으로 줄 가벼히 누르고 천천히 비비며 오른 손으로 뜯고 튕기고 하면서

처음엔 예상우의곡 뜯고 뒤에는 육요 연주했네

굵은 줄은 소리 낮고도 잦아 소낙비 내리는 듯

가는 줄 소리 가늘고도 애절하여 사정을 애가하는 듯

낮은 소리 나는 소리 엇섞여 뜯으니

큰 구슬 작은 구슬들이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하고

맑고 고운 꾀꼬리 소리 꽃가지 맡에 미끄러지는 듯

그윽히 흐느끼는 샘물에 떠 얼음덩이 여울물에 떠 내려가듯 하였네

얼음 샘물 차서 걸리어 막히듯 줄 엉기어 끊어졌는가

엉기어 끊어진 듯 줄소리 잠시 멋는데

각별히 그윽한 시름 솟고 남모르는 한 생겨나니

이런 때 소리가 없는 것은 소리라는 것 보다 감동적이네

다시 은병이 갑자기 깨어져 담겼던 물이 터져 나오듯

철갑두른 기병이 돌진하여 칼과 창이 부딫쳐 소리 내는 듯하고

곡을 끝내고 줄 채 빼어내어 비파 가슴 앞에 들고 한번 그으니

네줄이 한꺼번에 비단 찢는 소리 내네

동쪽 배고 서쪽 배고 고요히 아무소리 내지 못하고

오직 강물 가운데 가을달 희게 비친 것 만이 보이네.


생각에 잠겨있줄 채 거두어 줄 가운데 꽃아 놓고

옷매무새 고치고는 일어나 얼굴빛 바로잡고는

스스로 말하기를 저는 본시 장안의 여자로

하마룡 아래있는 집에 살고 있었는데

열세상에 비파를 잘 배워

이름이 교방의 제1부에 올라 있었고

한 곡 연주 끝나면 늘 비파의 명수들 감복케 하였으며

화장을 하면 언제나 추낭도 질투할 정도였답니다.

오릉의 귀족 젊은이들도 제게 줄 선물을 갖고 다투어

한 곡 연주에 빨간 엷은 비단 수없이 받았고

자개박은 은빛을 장단 맞추느라 부숴러뜨리기도 하였으며

핏빛 비단 치마를 엎지른 술에 더럽히기도 하였지요

올해도 즐기며 웃고 다시 다음해도 그렇게 하며

가을달 봄바람을 아무 시름없이 보냈지요

그러나 아우는 전쟁에 나가게 되고 양모는 죽으니

너녁가고 아침 오는대로 얼굴빛 낡아지고

문앞 쓸쓸하여져 손님들의 안장얹은 말 보기 드물게 되니

나이들어 시집가 장사꾼 마느라 되었지요

장사꾼은 이익만 소중히 여기지 이별은 가벼히 여기는지라

전달에 부량으로차를 사러갔었지요

저는 이 강 어귀를 왔다 갔다 하며 빈배를 지키고 있는데

밝은 달 배를 둘러싸고 강물은 싸늘하여

밤 깊은 때 갑자기 젊었을 적 꿈이라도 꾸면

꿈에 우느라 화장지운 눈물 붉게 줄줄 흐른답니다.


내 비파 가락 듣고 이미 탄식 했거니와

또 이말 들으니 거듭 한숨만 나오는 구려

똑같이 하늘 가에 몰락한 사람이거늘

서로만나 애가함에 어찌 반드시 전부터 안사람 띠질 것 있겠나

나는 지난 해 서울 떠난 뒤로부터

귀양살이고 심양성에 병들어 누워 있었다네

심양 땅은 편벽되어 음악이란 없고

1년 내내 악기소리라곤 듣지를 못하였네

사는 곳 분강에 가까워 땅 낯고 습하고

누런 갈대와 대숲이 집 둘레에 자라 있네

그런 속에서 아침 저녁 무슨 소리 들리겠나?

두견새 피 토하며 울고 원숭이 슬피우는 소리 뿐

어지 농부들의 산가와 마음 사람들의 피리조차 없겠는가?

조잡하고 시끄럽기만 하여 듣기 거북하기만 했지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연주 듣고 나니

마치 신선의 음악 들은 듯 귀 잠깐사이에 깨끗해진 둣 하네

제발 사양말고 다시앉아 한족조 더 뜯어 주게나

그대 위해 글로 옯겨 비파행 지어 줄 것이니


내 말에 감동된 듯 한참 서 있다가

물러앉아 집싸게 줄 튕기니 줄가락 다급해져

슬프기 먼져곡과 같지 않아

그자리 사람들 모두 듣고는 눈물 닦으며 울었는데

구 중에서도 눈물을 누가 가장 많이 흘렸던가?

강주사마인 내 푸른 저고리 눈물에 흠뻑 젖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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