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혼을 하려 상대자를 찾기 시작했지만 그가 바라는 상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사랑과 이성(理性)과 운명을 고루 갖춘 상대자를
원했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취직을 하려했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취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그가 바라는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독서에 열중했다.
그는 그이 아주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최근 읽은 어느 작품 속에서 작가는 봄이 가져오는 맨 처음의 징조는
늘 사람의 도덕적인 본성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활하는
대자연과 더불어 사람은 자기 자신도 부활하는 듯한 감상을 지니기를
희망한 답니다. 그리고 허송한 시간을 아까와하고 의지가 약했던 것을
뉘우치며 생각하는 가운데 미래가 우리들의 앞날에 밝은 것으로 보이게
되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더욱 좋아지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제가 혼자서 생활하고부터 이제까지 봄은 언제나 변함없이 저를 착한
마음으로 인도해 주었고 저는 그 가운데 오래도록 잠겨있는 것 같은
습관에 젖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겨울은 언제든지 실패였습니다만 이번
겨울은 이때까지의 모든 겨울 중에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신통한
겨울이었던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유쾌하게 그날그날을
보냈습니다. 사교계에도 출입하였으며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곤란하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 벌어들인 것도
없습니다마는......」
이때 톨스토이는 형 니콜라이를 만나 또 다시 즐거운 생활을 맞았다.
그는 니콜라이와 코카시아 지방으로 떠날 것을 계획했다. 스토이는
새로 맞게 될 생활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코카시아에는 예정보다 더
빨리 가게 되어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을 꿈꾸며 출발하였다.
카쟌을 거쳐 코카시아를 향해 니콜라이와 같이하는 여행을 그는
아주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제가 만나보려고 하던 부인들은 한 사람도 만나질 못했습니다.
늘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저는 자기 자신을 시험해 보는
인간이므로 뭇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보기도 하고 집시의 캠프에도
가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어떤 내면적인 투쟁을 하였는가에 대해선
아주머니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니콜라이 형은 제가 유달리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없었더라면 대단히 유쾌한 여행이 되었을텐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그가 말하는 것과 같이 하루에도 열 두 번이나
와이샤츠를 갈아입는 것에 대단히 화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그도 차라리 저와 같은 성격을 지녔더라면 여행이 훨씬 즐거웠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카쟌에서 즐거운 일 주일은 보내고 사라토프까지의 여행은
우울하게 보냈다. 거기에서 아스트라한까지 배로 여행한 것은 매우
시적(詩的)이었다. 눈에 띄이는 모든 풍경들이 신기하였고 여행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아스트라한에서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키즈키즈를 지나
스타로그라도프스카야란 마을에서 며칠 지냈다. 그러나 그는
그곳의생활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코카시아를 무척 그리워하던 그는 코카시아의 첫 인상에 실망을
나타냈다.
다음 글은 톨스토이가 그 지방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저는 무사히 그러나 조금 우울한 마음으로 월말 가까와서야
스타로그라도프스카야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형 니콜라이가 겪고 있는
생활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지내는 장교들과도 친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눈에 띄인 그의 생활 양식은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고만 예상하고 있었는데
직접 보고 나니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을 위치는 아주 낮으며
풍경이 좋다 하더라도 똑똑히 볼 수가 없습니다. 집들도 좋지 못한데다
생활의 위안이 되지못해 별로 재미도 없습니다. 장교들은 몹시 교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격상으로 보아 매우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다행히 형과 함께 있어서 서로 형제의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울 뿐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니콜라이를 따라 스타루이 율트의 무장천막으로 된 환자
수용소로 파견되었다.
아주머니에게 그곳의 모습을 그는 자세히 적어 보냈다.
「우리들은 거의 3주일 동안 천막에서 지냈습니다. 기후는 좋으며
생활도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즐거운 기분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였습니다. 여러겹으로 포개진 바위로 된 산의 아름다운 모습은
높이 솟은 것과 동굴처럼 된 바위들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바위 주변에 있는 온천은 아침마다 하얗게 뿜어 나오는 김으로 비탈진
절벽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기도 합니다. 온천의 끓어오르는 물은
그야말로 열탕을 즐길 수 있도록 뜨겁습니다. 이 골짜구니의 한가운데
흐르는 시냇물의 상류엔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세 가지의 물방앗간이
있습니다. 이 지방의 여자들은 이곳에 모여 빨래를 하곤 합니다.
여자들은 무척 아름답고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 여자의 옷은
몹시 검소하면서도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이 특색입니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떼를 지어다니는 것이나 이 지방의 원시적(原始的)인 경치는
한폭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저는 가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 황홀한 풍경을 바라보곤 합니다. 저는 매일 온천엘 다니고 있습니다.
철분(鐵分)이 풍부한 열탕 속에 들어가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아픈
다리가 순식간에 시원해집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류마치스를 않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로 스토이의 섬세한 정서를 엿볼 수 있으며 그의 문학 공부에
대한 열의도 보인다. 톨스토이의 이러한 편지를 많이 받은 아주머니는
톨스로이에게 소설을 써 보도록 권하였으며 열렬히 격려해 주었다.
톨스토이는 이때 지원병에 참가하였으며 어떤 영감의 세계로 인도되어
종교적인 체험을 쌓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일기에 기록하였다.
「1851년 6월 11일 스타루이 율트에서 어젯밤에 나는 여러 가지의 감상이
마음 속에 깃들어 뜬 눈으로 고스란히 세웠다.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에 내가 맛본 야릇한 감정의 아름다운
마음은 세속(世俗)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기도를 올릴
때마다 중얼거리는 주, 성모, 삼위일체, 은혜의 문, 수호신, 등의
이름들을 부르며 연거퍼 기도를 올렸다. 만일 기도하는 것을 탄원(歎願)
또는 감사로만 생각하였다면 나는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숭엄하고도 고상한 무엇인가를 소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존재와 서로 한 몸이 되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나 사상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한가지의 감정 속에서 기도와 감사를 한데 모았던 것이다.
공포의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마음 속의
모든 것을 한데 모아 기도한 숭엄하고 고상한 사랑이었다. ........」
그는 끊임없이 자기의 마음을 해부하고 분석해 보는 버릇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감각은 날이 갈수록 예민해져 갔다. 그는 늘 마음의
움직임과 자기의 외모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신경을 날카롭게 쓰는 특수한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소설가로서 장차 발전해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사람을 볼때에도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코카시아의 생활에 매우 만족해하였다. 이곳의 대자연을 한없이
노래하고 티없는 사람들의 마음씨를 찬미했으며 순박한 인정에 도취하여
새롭고 눈부신 행복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복잡하고 소란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정경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코카시아 지방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과 몸소 체험한 생활상의 기록들을 소설 [코삭크]에서 재미있게
엮었다. 그는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되어 그곳의 처녀와 사랑을 꿈꾸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처녀를 자연의 새로운 위대한 물체에 불과하다고
했다가 만나고 난 다음에는 자신이 참다운 인간이 되었다고 표현하였다.
톨스토이는 여자와 사랑을 속삭인 순간 감상적인 기분에 휩싸이기도
하였지만 자기의 귀족적인 신분으로 연정을 갖게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랑을 속삭이는 것만이 그에게 있어 생활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군무(軍務)의 바뿐 가운데서도 문학 연구와 소설 창작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원병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성심성의로
노력하여 때로는 생명의 위험까지 받은 적도 있었다.
1851년 11월 그는 친구와 하사프 율트로 여행 갔다가 친척 이리야
톨스로이를 만났다. 레오 톨스토이는 이리야 톨스토이 소개로 부대의
총사령관을 만나 사령관의 권유로 정식 군대에 편입하기 위해 치프리스
지방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치프리스는 페테르스부르크와 흡사하며 상당히 발달된 곳으로
보입니다. .... 저는 주로 독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곳은 교외입니다 마는 저에게 두 가지의 커다란 이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정원과 포도나무가 둘러싸여 도시라기보다는 오히려
농촌에 있는 것처럼 한적한 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후는 매우 따뜻하고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며 지금까지 눈은 한번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둘째는 방 두 칸을 빌릴 경우 방세가 한 달에 은화(銀貨) 5루불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수업료도 내지 않고 독일 사람들로부터
독일 말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제겐 책도 있습니다. 할 일도 있으며
여가도 있습니다. 아무도 방해하러 오지 않는 까닭입니다.
아주머니께서 언젠가 제게 소설을 써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 일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할 일이란
것은 문학상의 일입니다. 제가 쓰고 있는 것이 언제쯤 세상에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선 아직 분명히 예측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는 일이므로 저는 그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그 일에 너무 깊이 들어가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후 11월 23일 형 세루게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문학에 관한
것은 조금도 쓰지 않고 다만 정식 군인으로서 편입되는 즐거움만을 썼다.
뽐내기를 좋아하는 자기의 기분을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벌써부터 희망한 것입니다 마는 저는 제4포병 중대에 포병으로서의
편입이 며칠 후에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오른편으로 돌아 를
한다든지 지나가는 장교와 장성급에 대하여 거수 경례를 하게 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샬메르로 만든 외투를 입고 10루블을 주고
구한 좋은 모자를 쓰고 거리를 구경하고 있는 현재에도 저는 그런 동경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포병 외투를 입게 된다는 생각에 벅차 있습니다.
......」
그는 치프리스에서 1852년을 맞이하였다. 그해 1월 6일에 그는 다시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아주머니를 얼마나 존경하고
있었던가는 이 편지로 충분히 알 수 있다.
「11월 24일자의 편지를 받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마음이
연약해진 것은 병환 중에 계신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머니께서
보내주신 편지는 어느 시기를 계기(契機)로 하여 그 후부터는 언제든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예전이나 다름없이 약합니다. 맨처음 저는 이
약한 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편지는 너무나 슬픔에 넘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게도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그는 어질고 착한 아주머니의 의견에 되도록이면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 자신도 또한 그렇게 하려고 하였다.
스타루이 율트에서 그는 장교들과 어울리다 노름에 끼여들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으나 돈을 잃게 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기에
몰두하였다. 결국 그는 거액의 돈을 잃고 빚까지 짊어져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체첸 출신의 사도와 사귀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톨스토이는 사도와 친구가 되기까지 체첸족의 관습에 따라 선물 교환을
하였고 사도의 집에 초대되어 갔다. 체첸족의 여러 가지 관습에 따라
친구의 의식을 치루고 사도와 생사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사도는
톨스토이를 위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노름에 진 빚으로 고민하던
톨스토이는 니콜라이 형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내 도움을 받았다.
「.....어젯밤 금전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빚을 갚을 수가 있을까 하고 저는 끊임없이 생각한 끝에 만일
앞으로, 함부로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 빚은 반드시 2,3년 중으로 갚을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달까지 갚지 않으면 5백
루블의 빚이 저를 절망 속으로 이끌어 넣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빚을
졌었던 일도 좋지 못하거니와 이 낯설은 곳까지 와서 빚을 지게 되었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저는 더욱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는 이 어려운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기도의 덕분인지 톨스토이는 사도와 니콜라이
형의 도움으로 빚을 갚을 수가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후 얼마 지나 스타로그라도프스카야에서 아주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일전의 저는 쾌락한 가운데서 또는 운동하는 가운데서 행복을
발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정반대로
내외양면(內外兩面)의 안식(安息)이 제겐 희망의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사랑과 우정과의 고요한 기쁨에 가득찬 싫증이 나지 않는 평안한
마음의 움직임을 가슴 속에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겐 행복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안한 매력(魅力)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일 때의 즐거운 순간과 그리고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피곤해졌을
때와 이 사랑을 잃었을 때에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의 생활상의
경험과 종교가 아직 지극히 빈약한 것입니다 마는 어쨌든 제게 인생은
시련(試鍊)이란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코카시아에 간다는 생각이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와 같이 들립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일어나리라고 믿어지는 모든 일이 저의 이익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神)이 그것을 바라고 계시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지나친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겐 이와 같은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확신을 위하여
저는 지금 말씀드린 육체상의 상실과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가
있겠습니다. ......모든 일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겐
불안이 없을 뿐더러 불쾌한 마음도 없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살고 계시니까요. ....저도 이제 장가를 들어야 겠습니다.
저의 아내는 얌전하고 어질고 저를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면 안되겠습니다.
그 여자는 저와 마찬가지로 아주머니를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사이엔 자식이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아주머니에게 할머니라고 부를 것입니다. .......」
그는 문학에 관한 일에도 그 동안 어느 정도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의 투철한 반성력과 자신감은 그때의 일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도박에 대한 열성은 차츰차츰 맹렬한 감각에의 습관으로
옮겨가는 사욕에서 온 열정이다.
2. 정욕(情欲)은 육체적인 욕망이다. 상상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육체, 그것의 욕망인 것이다. 이것을 억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욕망과의 싸움이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와 정신을 괴롭게 일을 하는
것뿐이다.
3. 허영심―이것은 타인에겐 가장 해(害)가 적고 내겐 가장 해를 많이
끼치는 것이다. ....」
「.....한때 평생을 통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몇 해동안을
허무하게 지내왔다는 후회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면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때부터의 일이다. 나의 도덕적 발달의 과정을 기록해 보는 것은 깊은
흥미를 자아내는 것임에 틀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이
아니라 사상마저 충분하지를 못한 바가 있었다.」
그는 이때 자기의 나아갈 길을 확실히 자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때에
벌써 처녀작(處女作) [유년시대] 뿐만 아니라 [소년시대] [청년시대]를 쓸
것을 구상하고 있었던 사실을 추측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가 작품
활동을 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였을 때엔 자기의 힘이 아직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할 일에
대한 불안과 구상된 일에 어떤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사상에는 끝맺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흘러간 그
옛날의 모든 자가들은 사상의 표현에 있어 매우 어려운 곳까지 벌써 닿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즐겨 읽어온 모든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이 지녔던
역량이 매우 위대하였다는 사실을 평소에 느끼고 있었던 만큼 자기가
그때에 가진 역량이 도저히 그들에게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반성함으로써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던 까닭에 새로운 마음의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나의 가슴 속에 무엇인가 깃들어,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해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문학 활동에 있어 세계 전 인류가 놀랄 만큼
눈부신 결과를 맺게 해준 원동력(原動力)이 된 것이다.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사랑과 이성(理性)과 운명을 고루 갖춘 상대자를
원했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취직을 하려했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취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그가 바라는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독서에 열중했다.
그는 그이 아주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최근 읽은 어느 작품 속에서 작가는 봄이 가져오는 맨 처음의 징조는
늘 사람의 도덕적인 본성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활하는
대자연과 더불어 사람은 자기 자신도 부활하는 듯한 감상을 지니기를
희망한 답니다. 그리고 허송한 시간을 아까와하고 의지가 약했던 것을
뉘우치며 생각하는 가운데 미래가 우리들의 앞날에 밝은 것으로 보이게
되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더욱 좋아지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제가 혼자서 생활하고부터 이제까지 봄은 언제나 변함없이 저를 착한
마음으로 인도해 주었고 저는 그 가운데 오래도록 잠겨있는 것 같은
습관에 젖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겨울은 언제든지 실패였습니다만 이번
겨울은 이때까지의 모든 겨울 중에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신통한
겨울이었던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유쾌하게 그날그날을
보냈습니다. 사교계에도 출입하였으며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곤란하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 벌어들인 것도
없습니다마는......」
이때 톨스토이는 형 니콜라이를 만나 또 다시 즐거운 생활을 맞았다.
그는 니콜라이와 코카시아 지방으로 떠날 것을 계획했다. 스토이는
새로 맞게 될 생활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코카시아에는 예정보다 더
빨리 가게 되어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을 꿈꾸며 출발하였다.
카쟌을 거쳐 코카시아를 향해 니콜라이와 같이하는 여행을 그는
아주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제가 만나보려고 하던 부인들은 한 사람도 만나질 못했습니다.
늘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저는 자기 자신을 시험해 보는
인간이므로 뭇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보기도 하고 집시의 캠프에도
가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어떤 내면적인 투쟁을 하였는가에 대해선
아주머니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니콜라이 형은 제가 유달리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없었더라면 대단히 유쾌한 여행이 되었을텐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그가 말하는 것과 같이 하루에도 열 두 번이나
와이샤츠를 갈아입는 것에 대단히 화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그도 차라리 저와 같은 성격을 지녔더라면 여행이 훨씬 즐거웠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카쟌에서 즐거운 일 주일은 보내고 사라토프까지의 여행은
우울하게 보냈다. 거기에서 아스트라한까지 배로 여행한 것은 매우
시적(詩的)이었다. 눈에 띄이는 모든 풍경들이 신기하였고 여행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아스트라한에서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키즈키즈를 지나
스타로그라도프스카야란 마을에서 며칠 지냈다. 그러나 그는
그곳의생활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코카시아를 무척 그리워하던 그는 코카시아의 첫 인상에 실망을
나타냈다.
다음 글은 톨스토이가 그 지방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저는 무사히 그러나 조금 우울한 마음으로 월말 가까와서야
스타로그라도프스카야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형 니콜라이가 겪고 있는
생활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지내는 장교들과도 친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눈에 띄인 그의 생활 양식은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고만 예상하고 있었는데
직접 보고 나니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을 위치는 아주 낮으며
풍경이 좋다 하더라도 똑똑히 볼 수가 없습니다. 집들도 좋지 못한데다
생활의 위안이 되지못해 별로 재미도 없습니다. 장교들은 몹시 교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격상으로 보아 매우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다행히 형과 함께 있어서 서로 형제의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울 뿐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니콜라이를 따라 스타루이 율트의 무장천막으로 된 환자
수용소로 파견되었다.
아주머니에게 그곳의 모습을 그는 자세히 적어 보냈다.
「우리들은 거의 3주일 동안 천막에서 지냈습니다. 기후는 좋으며
생활도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즐거운 기분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였습니다. 여러겹으로 포개진 바위로 된 산의 아름다운 모습은
높이 솟은 것과 동굴처럼 된 바위들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바위 주변에 있는 온천은 아침마다 하얗게 뿜어 나오는 김으로 비탈진
절벽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기도 합니다. 온천의 끓어오르는 물은
그야말로 열탕을 즐길 수 있도록 뜨겁습니다. 이 골짜구니의 한가운데
흐르는 시냇물의 상류엔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세 가지의 물방앗간이
있습니다. 이 지방의 여자들은 이곳에 모여 빨래를 하곤 합니다.
여자들은 무척 아름답고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 여자의 옷은
몹시 검소하면서도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이 특색입니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떼를 지어다니는 것이나 이 지방의 원시적(原始的)인 경치는
한폭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저는 가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 황홀한 풍경을 바라보곤 합니다. 저는 매일 온천엘 다니고 있습니다.
철분(鐵分)이 풍부한 열탕 속에 들어가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아픈
다리가 순식간에 시원해집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류마치스를 않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로 스토이의 섬세한 정서를 엿볼 수 있으며 그의 문학 공부에
대한 열의도 보인다. 톨스토이의 이러한 편지를 많이 받은 아주머니는
톨스로이에게 소설을 써 보도록 권하였으며 열렬히 격려해 주었다.
톨스토이는 이때 지원병에 참가하였으며 어떤 영감의 세계로 인도되어
종교적인 체험을 쌓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일기에 기록하였다.
「1851년 6월 11일 스타루이 율트에서 어젯밤에 나는 여러 가지의 감상이
마음 속에 깃들어 뜬 눈으로 고스란히 세웠다.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에 내가 맛본 야릇한 감정의 아름다운
마음은 세속(世俗)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기도를 올릴
때마다 중얼거리는 주, 성모, 삼위일체, 은혜의 문, 수호신, 등의
이름들을 부르며 연거퍼 기도를 올렸다. 만일 기도하는 것을 탄원(歎願)
또는 감사로만 생각하였다면 나는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숭엄하고도 고상한 무엇인가를 소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존재와 서로 한 몸이 되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나 사상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한가지의 감정 속에서 기도와 감사를 한데 모았던 것이다.
공포의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마음 속의
모든 것을 한데 모아 기도한 숭엄하고 고상한 사랑이었다. ........」
그는 끊임없이 자기의 마음을 해부하고 분석해 보는 버릇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감각은 날이 갈수록 예민해져 갔다. 그는 늘 마음의
움직임과 자기의 외모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신경을 날카롭게 쓰는 특수한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소설가로서 장차 발전해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사람을 볼때에도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코카시아의 생활에 매우 만족해하였다. 이곳의 대자연을 한없이
노래하고 티없는 사람들의 마음씨를 찬미했으며 순박한 인정에 도취하여
새롭고 눈부신 행복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복잡하고 소란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정경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코카시아 지방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과 몸소 체험한 생활상의 기록들을 소설 [코삭크]에서 재미있게
엮었다. 그는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되어 그곳의 처녀와 사랑을 꿈꾸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처녀를 자연의 새로운 위대한 물체에 불과하다고
했다가 만나고 난 다음에는 자신이 참다운 인간이 되었다고 표현하였다.
톨스토이는 여자와 사랑을 속삭인 순간 감상적인 기분에 휩싸이기도
하였지만 자기의 귀족적인 신분으로 연정을 갖게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랑을 속삭이는 것만이 그에게 있어 생활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군무(軍務)의 바뿐 가운데서도 문학 연구와 소설 창작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원병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성심성의로
노력하여 때로는 생명의 위험까지 받은 적도 있었다.
1851년 11월 그는 친구와 하사프 율트로 여행 갔다가 친척 이리야
톨스로이를 만났다. 레오 톨스토이는 이리야 톨스토이 소개로 부대의
총사령관을 만나 사령관의 권유로 정식 군대에 편입하기 위해 치프리스
지방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치프리스는 페테르스부르크와 흡사하며 상당히 발달된 곳으로
보입니다. .... 저는 주로 독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곳은 교외입니다 마는 저에게 두 가지의 커다란 이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정원과 포도나무가 둘러싸여 도시라기보다는 오히려
농촌에 있는 것처럼 한적한 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후는 매우 따뜻하고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며 지금까지 눈은 한번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둘째는 방 두 칸을 빌릴 경우 방세가 한 달에 은화(銀貨) 5루불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수업료도 내지 않고 독일 사람들로부터
독일 말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제겐 책도 있습니다. 할 일도 있으며
여가도 있습니다. 아무도 방해하러 오지 않는 까닭입니다.
아주머니께서 언젠가 제게 소설을 써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 일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할 일이란
것은 문학상의 일입니다. 제가 쓰고 있는 것이 언제쯤 세상에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선 아직 분명히 예측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는 일이므로 저는 그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그 일에 너무 깊이 들어가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후 11월 23일 형 세루게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문학에 관한
것은 조금도 쓰지 않고 다만 정식 군인으로서 편입되는 즐거움만을 썼다.
뽐내기를 좋아하는 자기의 기분을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벌써부터 희망한 것입니다 마는 저는 제4포병 중대에 포병으로서의
편입이 며칠 후에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오른편으로 돌아 를
한다든지 지나가는 장교와 장성급에 대하여 거수 경례를 하게 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샬메르로 만든 외투를 입고 10루블을 주고
구한 좋은 모자를 쓰고 거리를 구경하고 있는 현재에도 저는 그런 동경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포병 외투를 입게 된다는 생각에 벅차 있습니다.
......」
그는 치프리스에서 1852년을 맞이하였다. 그해 1월 6일에 그는 다시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아주머니를 얼마나 존경하고
있었던가는 이 편지로 충분히 알 수 있다.
「11월 24일자의 편지를 받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마음이
연약해진 것은 병환 중에 계신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머니께서
보내주신 편지는 어느 시기를 계기(契機)로 하여 그 후부터는 언제든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예전이나 다름없이 약합니다. 맨처음 저는 이
약한 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편지는 너무나 슬픔에 넘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게도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그는 어질고 착한 아주머니의 의견에 되도록이면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 자신도 또한 그렇게 하려고 하였다.
스타루이 율트에서 그는 장교들과 어울리다 노름에 끼여들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으나 돈을 잃게 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기에
몰두하였다. 결국 그는 거액의 돈을 잃고 빚까지 짊어져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체첸 출신의 사도와 사귀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톨스토이는 사도와 친구가 되기까지 체첸족의 관습에 따라 선물 교환을
하였고 사도의 집에 초대되어 갔다. 체첸족의 여러 가지 관습에 따라
친구의 의식을 치루고 사도와 생사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사도는
톨스토이를 위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노름에 진 빚으로 고민하던
톨스토이는 니콜라이 형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내 도움을 받았다.
「.....어젯밤 금전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빚을 갚을 수가 있을까 하고 저는 끊임없이 생각한 끝에 만일
앞으로, 함부로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 빚은 반드시 2,3년 중으로 갚을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달까지 갚지 않으면 5백
루블의 빚이 저를 절망 속으로 이끌어 넣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빚을
졌었던 일도 좋지 못하거니와 이 낯설은 곳까지 와서 빚을 지게 되었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저는 더욱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는 이 어려운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기도의 덕분인지 톨스토이는 사도와 니콜라이
형의 도움으로 빚을 갚을 수가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후 얼마 지나 스타로그라도프스카야에서 아주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일전의 저는 쾌락한 가운데서 또는 운동하는 가운데서 행복을
발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정반대로
내외양면(內外兩面)의 안식(安息)이 제겐 희망의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사랑과 우정과의 고요한 기쁨에 가득찬 싫증이 나지 않는 평안한
마음의 움직임을 가슴 속에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겐 행복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안한 매력(魅力)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일 때의 즐거운 순간과 그리고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피곤해졌을
때와 이 사랑을 잃었을 때에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의 생활상의
경험과 종교가 아직 지극히 빈약한 것입니다 마는 어쨌든 제게 인생은
시련(試鍊)이란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코카시아에 간다는 생각이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와 같이 들립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일어나리라고 믿어지는 모든 일이 저의 이익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神)이 그것을 바라고 계시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지나친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겐 이와 같은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확신을 위하여
저는 지금 말씀드린 육체상의 상실과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가
있겠습니다. ......모든 일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겐
불안이 없을 뿐더러 불쾌한 마음도 없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살고 계시니까요. ....저도 이제 장가를 들어야 겠습니다.
저의 아내는 얌전하고 어질고 저를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면 안되겠습니다.
그 여자는 저와 마찬가지로 아주머니를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사이엔 자식이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아주머니에게 할머니라고 부를 것입니다. .......」
그는 문학에 관한 일에도 그 동안 어느 정도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의 투철한 반성력과 자신감은 그때의 일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도박에 대한 열성은 차츰차츰 맹렬한 감각에의 습관으로
옮겨가는 사욕에서 온 열정이다.
2. 정욕(情欲)은 육체적인 욕망이다. 상상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육체, 그것의 욕망인 것이다. 이것을 억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욕망과의 싸움이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와 정신을 괴롭게 일을 하는
것뿐이다.
3. 허영심―이것은 타인에겐 가장 해(害)가 적고 내겐 가장 해를 많이
끼치는 것이다. ....」
「.....한때 평생을 통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몇 해동안을
허무하게 지내왔다는 후회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면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때부터의 일이다. 나의 도덕적 발달의 과정을 기록해 보는 것은 깊은
흥미를 자아내는 것임에 틀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이
아니라 사상마저 충분하지를 못한 바가 있었다.」
그는 이때 자기의 나아갈 길을 확실히 자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때에
벌써 처녀작(處女作) [유년시대] 뿐만 아니라 [소년시대] [청년시대]를 쓸
것을 구상하고 있었던 사실을 추측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가 작품
활동을 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였을 때엔 자기의 힘이 아직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할 일에
대한 불안과 구상된 일에 어떤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사상에는 끝맺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흘러간 그
옛날의 모든 자가들은 사상의 표현에 있어 매우 어려운 곳까지 벌써 닿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즐겨 읽어온 모든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이 지녔던
역량이 매우 위대하였다는 사실을 평소에 느끼고 있었던 만큼 자기가
그때에 가진 역량이 도저히 그들에게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반성함으로써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던 까닭에 새로운 마음의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나의 가슴 속에 무엇인가 깃들어,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해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문학 활동에 있어 세계 전 인류가 놀랄 만큼
눈부신 결과를 맺게 해준 원동력(原動力)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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