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모든 선물을 받은 여자>라는
뜻이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자기 뜻을 거역하고 인간
들에게 불을 훔쳐다 주자 그 대가로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
기로 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에게 흙과 물을 섞어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헤파이스토스가 여자를
빚어내자 다른 신들은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여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자기가 지닌 재능을 불어 넣었다. 헤르메스는 여자의
마음속에 거짓과 속임수와 교활한 심성까지 담아 주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과 성적인 매력과 손재주와 언변등을 고루
갖춘 여자 판도라가 이 세상에 나왔다. 제우스는 그녀를 프로
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 프로메테우스는
단박에 판도라를 의심했다.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훌륭하지만
마음속에 거짓을 품고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페
메테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
았다. 제우스는 그들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상자 하나를 주었다.
그러면서 <이 상자를 받아서 안전한 곳에 고이 간직하거라. 하지
만 미리 알려 두건데 어떠할 일이 있어도 이것을 열어보면 안된다>
하고 말했다. 에피메테우스는 사랑에 흠뻑빠진 나머지 제우스가
주는 선물을 받지 말라는 프로메테우스의 경고를 잊고 상자를 받아
자기 집 한구석에 숨겨 두었다. 판도라는 남편과 함께 행복한 나날
을 보냈다. 세상은 경이로웠다. 아픈 사람도 없고 늙는 사람도 없
었으며 모두가 선량했다. 그러던 어느날 판도라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신비한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
서 판도라는 요염한 자태를 한껏 드러내며 상자의 뚜껑을 열고
잠깐 들여다 보기만 하자고 남편을 졸랐다. 에피메테우스는 제우
스가 열지 말라고 했다면서 아내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판도라는 상자를 열어 보자고 매일같이 성화를 부렸지만 에피
메테우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 판도라는 남편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상자를 감춰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상자의 자물쇠를 부수고 묵직한 뚜껑을 들어 올렸다.
판도라가 미쳐 상자를 들여다 보기도 전에 상자에서 무시무시한
울부짖음과 고통에 겨운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판도라는 겁에
질린채 흠칫 물러섰다. 그때 상자에서 증오 질투 잔인성 분노
재앙이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는 뚜껑을 도로 닫았다. 그러나 이미
온갖 불행이 인간들 사이로 펴저나간 뒤였다. 다만 상자 맡바닥에
무언가 자그마한 것이 잔뜩 움크린채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였다. 그 뒤로 인간들은 갖가지 불행에 시달리면서도
희망만은 고이고이 간작하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