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서 3장 2절(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의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부응하리라.)은 착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괴로움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훌륭한 설명을 하고
있다. 실제로 착한 사람의 고난은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가 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신의 뜻을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시편 34:19)>. 이것은 이미 수천년 전에 하신 말씀이지만, 착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각오해야만 하는가를 극히 간단히 말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고난을 당해야만 한다. 다른 길로는 그들이 당도하고자 하는 진정한
선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부단히 이 고난을 피하여 흔히 이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혹은 적어도 볼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한다면, 거기에서 선인들의 모든 오류와 잘못된
길과 참으로 괴로운 운명이 빚어진다. 많은 고난을 받는 것,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꺼이 이에 따르라. 그리고 되도록 빨리, 되도록 완전히
마음을 가라 앉히라.
그때 비로소 당신은 완성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3:19, 히브리서 12:16, 잠언 3:12, 고린도전서 11:32,
시편 71:29,97:11,113:7
위안은 고통의 바로 곁에 있다. 이는 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자진해서, 고통을
참고 견디는 사람들 바로 곁에 계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고난
그 자체가 실로 달콤한, 견디기 쉬운 것으로 될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위안이 없다면 아무도 저 <좁은 길>을 걸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이 위안을 얻어 행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