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
만약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내용을 의
심하고,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두 번
째 투명한 빛이 나타난다. 그 빛은 외적인 숨이 멎고 나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에 나타난다. 프라나는 생전
에 쌓은 선과 악의 진화력[까르마]에 따라 오른 쪽이나 왼 쪽 통
로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육체에 있는 여러 구멍을 통해 밖
으로 빠져나간다. 의식은 그 순간 투명한 상태가 된다. 위에서
말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 라는 것은, 중앙 통로의 상태와
생전의 수행 정도에 따라 더 길 수도 있고 더 짧을 수도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 때, 의식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자기가 지금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지
못하는 혼란 때문에,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는
마치 자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우
는 소리도 듣는다. 그대는 그가 쌓은 진화력에서 비롯되는 두려
운 환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찾아오기 전에, 다음 가르
침을 읽어 주어야만 한다. 이 때 이미 탄트라 수행의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
는 사람도 있다.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의 이름을 3번 부른 다음 위에서 언급한 투명한 빛에 대한 가르
침을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
는 사람에게는 그의 수호불(守護佛)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도록 다
음과 같이 알려 주어야 한다.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의식은, 몸에서는 빠져나갔지만
아직 시신 주위를 떠돌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상
태는 숨이 완전히 멎은 후 약 30분 후부터 여러 날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시신을 옮기거나 매장하지 않고
여러 날 그대로 둔다. 물론 더운 지방에서는 시체가 쉽게 부패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수행이 높은 경지에 도달한
라마승의 경우 앉은 채로 죽는 일이 있는데, 상당 기간 부패하
지도 않고 앉은 자세로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 완성 단계 수
행을 한 사람은 미묘한 신경계의 의식-에너지 통로가 활성화되
어 있다. 통로를 막고 있는 장애물이 제거되고, 미묘한 내적인
차원과 의식이 몸 밖으로 나간 상태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므로
투명한 빛을 즉시 자기 자신의 의식과 동일시할 수 있다. 창조
단계 수행을 한 사람은 시각화하는 능력이 계발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수호불과 성스러운 환경인 만다라에 익숙해져 있다. 수
호불의 형상과 만다라의 구조에 대한 시각화 상상은 프라나와
의식-에너지 통로와 빈두의 각성을 촉진한다. 그러므로 그들에
게는 수호불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고, 그와 결합하라고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그대의 수호불을 마음 속
으로 그리고 그에게 집중하도록 하시오. 마음이 흩어지면 안 됩
니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그대의 수호불에 집중해야 합니다.
수호불의 모습을 뚜렷이 시각화하되, 물질적인 실체로 여기지는
마시오. 물에 비친 달처럼 실체가 없지만,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집중하시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
해 주도록 하라.
위대한 자비의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도록 하시오.
평범한 사람 은 체계적인 시각화 수행이나 변형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육체적인 에너지와 의식을 다
른 상태로 변형시킬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런 수행이 보편화되
어 있는 문화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붓다나 보살들에 대
해서는 친숙한 상태이다. 따라서 자신의 명상 대상인 수호불을
선택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나 국가적인 상징을 명상 대상으로 삼
아도 된다.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장소를 만다라로
여기고 거기에 마음을 집중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는 대천사장격인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를 명
상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다. 티벳 사람들은 자비의 주
아발로키테스바라를 구원자로 여긴다. 모든 중생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고통에서 건져 주는 존재가 바로 아발로키테스바라
이다.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나 모세, 또는 무하마드나 크리슈나
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와칸 탕카, 오딘, 제우스, 또
는 우주적인 어머니를 상징하는 그 어떤 여성신을 대상으로 삼
아도 된다. 자비와 궁극적인 실재가 인격화된 존재로 선택된 신
이라면, 그에 대한 명상은 영혼을 평안하게 해준다. 또 그와의
결합을 통해 궁극적인 실재와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어떤 환상이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않
도록 알려 주어야 한다. 놀랄 만한 일이 벌어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자신
이 선택한 구원자의 모습에 집중함으로써, 그들 위대한 구원자
들의 본질인 자비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중간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사람도, 분명히 이 가르침을
통해 중간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생전에 스승으로부터 중간
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어도 수행을 통한 체험이 깊지 않은 사
람, 혼자서는 중간계의 투명한 빛과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에게
는 영적인 스승이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이 가르침을 읽
어 줌으로써 일깨워 주어야 한다. 생전에 이 진리를 깨닫고 통
찰력을 얻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고 차원이
낮은 단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이 가르침을 꼭 읽어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으면
대단히 비참한 상황에 떨어진다. 이것은 어떤 종교적인 전통이
가하는 형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적인 상태 때문에 따라 오
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어 본능의 충동
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의 생명 에너지는, 깨달음을 얻은 만큼 확
장되고 유연해진다.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지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영적인 상태가 이렇게 유연하고 개방적인 상황에서 어
둠을 향해 방향을 전환한다면 자연히 극단적인 어두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적인 상태가 개방적이고 유연하기 때문에, 부정
적인 지옥 상태에 들어가기도 그만큼 쉬운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
식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몸 밖에서 투
명한 빛을 경험하는 두 번째 중간계에 대한 이 가르침을 통해,
의식이 각성되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두 번
째 중간계에서 가르침을 받을 때, 자신이 죽은 것인지 살아 있
는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던 불투명한 의식이 갑자기 투명해
진다. 이 상태를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 이라고 한다. 이 때
가르침이 성공적으로 전달되면 어머니 실재와 자식 실재가 융합
되고, 진화의 추진력[까르마]이 힘을 잃는다. 햇빛이 어두움을 정
복하는 것 같이, 투명한 진리의 빛이 진화의 추진력을 소멸시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신비한 몸은 마음으로 만든 미묘한 에너지 몸으로써 꿈에서 경
험하는 몸과 비슷하다. 요가 탄트라에서는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이 몸을 만든다. 중간계에서는 까르마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신비한 몸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중간계에서 <중간계
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
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면, 그 몸이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만들 수 있는 투명하게 각성된 몸으로 즉
시 변형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한 진화가 이렇게 엄청나게 가속
되는 이유는, 중간계 상태의 몸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유연성과
개방성 때문이다.
어머니 실재 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궁극적인 실재 즉 근원
적인 투명한 빛을 가리킨다. 이 궁극적인 실재가 만물의 모체이
다. 그래서 어머니 라고 한다. 자식 실재 는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투명한 빛을 말한다. 이 빛은 인간의 개념적인 지식에 가
려 희미하게 밖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주관과 객관을 구별하는
이원성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상태의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몸
을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 이라고 한다. 이 몸은 투명한 어
머니 빛과 하나 될 때 완전히 투명해진다. 투명한 빛을 인식하
는 아버지 로서의 신비한 몸과 어머니 로서의 투명한 빛이 결
합할 때 탄트라 요가 최고 단계인 통합이 이루어진다. 이 통합
이 마하무드라이자 위대한 완성이며,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
지이다.
두 번째 중간계 라고 부르는 상태가 정신적인 몸[心體] 앞에
나타날 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의식은 그대가 말하는 것
을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 이
가르침을 읽어 주면 효과가 있다. 아직은 까르마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방향을 바꾸는데 큰 어려움
이 없다. 첫 단계 중간계에서는 근원적인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할지라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인식하여 절대 자유
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만약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내용을 의
심하고,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두 번
째 투명한 빛이 나타난다. 그 빛은 외적인 숨이 멎고 나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에 나타난다. 프라나는 생전
에 쌓은 선과 악의 진화력[까르마]에 따라 오른 쪽이나 왼 쪽 통
로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육체에 있는 여러 구멍을 통해 밖
으로 빠져나간다. 의식은 그 순간 투명한 상태가 된다. 위에서
말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 라는 것은, 중앙 통로의 상태와
생전의 수행 정도에 따라 더 길 수도 있고 더 짧을 수도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 때, 의식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자기가 지금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지
못하는 혼란 때문에,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는
마치 자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우
는 소리도 듣는다. 그대는 그가 쌓은 진화력에서 비롯되는 두려
운 환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찾아오기 전에, 다음 가르
침을 읽어 주어야만 한다. 이 때 이미 탄트라 수행의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
는 사람도 있다.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의 이름을 3번 부른 다음 위에서 언급한 투명한 빛에 대한 가르
침을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
는 사람에게는 그의 수호불(守護佛)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도록 다
음과 같이 알려 주어야 한다.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의식은, 몸에서는 빠져나갔지만
아직 시신 주위를 떠돌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상
태는 숨이 완전히 멎은 후 약 30분 후부터 여러 날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시신을 옮기거나 매장하지 않고
여러 날 그대로 둔다. 물론 더운 지방에서는 시체가 쉽게 부패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수행이 높은 경지에 도달한
라마승의 경우 앉은 채로 죽는 일이 있는데, 상당 기간 부패하
지도 않고 앉은 자세로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 완성 단계 수
행을 한 사람은 미묘한 신경계의 의식-에너지 통로가 활성화되
어 있다. 통로를 막고 있는 장애물이 제거되고, 미묘한 내적인
차원과 의식이 몸 밖으로 나간 상태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므로
투명한 빛을 즉시 자기 자신의 의식과 동일시할 수 있다. 창조
단계 수행을 한 사람은 시각화하는 능력이 계발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수호불과 성스러운 환경인 만다라에 익숙해져 있다. 수
호불의 형상과 만다라의 구조에 대한 시각화 상상은 프라나와
의식-에너지 통로와 빈두의 각성을 촉진한다. 그러므로 그들에
게는 수호불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고, 그와 결합하라고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그대의 수호불을 마음 속
으로 그리고 그에게 집중하도록 하시오. 마음이 흩어지면 안 됩
니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그대의 수호불에 집중해야 합니다.
수호불의 모습을 뚜렷이 시각화하되, 물질적인 실체로 여기지는
마시오. 물에 비친 달처럼 실체가 없지만,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집중하시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
해 주도록 하라.
위대한 자비의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도록 하시오.
평범한 사람 은 체계적인 시각화 수행이나 변형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육체적인 에너지와 의식을 다
른 상태로 변형시킬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런 수행이 보편화되
어 있는 문화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붓다나 보살들에 대
해서는 친숙한 상태이다. 따라서 자신의 명상 대상인 수호불을
선택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나 국가적인 상징을 명상 대상으로 삼
아도 된다.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장소를 만다라로
여기고 거기에 마음을 집중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는 대천사장격인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를 명
상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다. 티벳 사람들은 자비의 주
아발로키테스바라를 구원자로 여긴다. 모든 중생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고통에서 건져 주는 존재가 바로 아발로키테스바라
이다.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나 모세, 또는 무하마드나 크리슈나
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와칸 탕카, 오딘, 제우스, 또
는 우주적인 어머니를 상징하는 그 어떤 여성신을 대상으로 삼
아도 된다. 자비와 궁극적인 실재가 인격화된 존재로 선택된 신
이라면, 그에 대한 명상은 영혼을 평안하게 해준다. 또 그와의
결합을 통해 궁극적인 실재와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어떤 환상이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않
도록 알려 주어야 한다. 놀랄 만한 일이 벌어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자신
이 선택한 구원자의 모습에 집중함으로써, 그들 위대한 구원자
들의 본질인 자비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중간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사람도, 분명히 이 가르침을
통해 중간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생전에 스승으로부터 중간
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어도 수행을 통한 체험이 깊지 않은 사
람, 혼자서는 중간계의 투명한 빛과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에게
는 영적인 스승이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이 가르침을 읽
어 줌으로써 일깨워 주어야 한다. 생전에 이 진리를 깨닫고 통
찰력을 얻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고 차원이
낮은 단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이 가르침을 꼭 읽어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으면
대단히 비참한 상황에 떨어진다. 이것은 어떤 종교적인 전통이
가하는 형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적인 상태 때문에 따라 오
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어 본능의 충동
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의 생명 에너지는, 깨달음을 얻은 만큼 확
장되고 유연해진다.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지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영적인 상태가 이렇게 유연하고 개방적인 상황에서 어
둠을 향해 방향을 전환한다면 자연히 극단적인 어두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적인 상태가 개방적이고 유연하기 때문에, 부정
적인 지옥 상태에 들어가기도 그만큼 쉬운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
식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몸 밖에서 투
명한 빛을 경험하는 두 번째 중간계에 대한 이 가르침을 통해,
의식이 각성되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두 번
째 중간계에서 가르침을 받을 때, 자신이 죽은 것인지 살아 있
는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던 불투명한 의식이 갑자기 투명해
진다. 이 상태를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 이라고 한다. 이 때
가르침이 성공적으로 전달되면 어머니 실재와 자식 실재가 융합
되고, 진화의 추진력[까르마]이 힘을 잃는다. 햇빛이 어두움을 정
복하는 것 같이, 투명한 진리의 빛이 진화의 추진력을 소멸시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신비한 몸은 마음으로 만든 미묘한 에너지 몸으로써 꿈에서 경
험하는 몸과 비슷하다. 요가 탄트라에서는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이 몸을 만든다. 중간계에서는 까르마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신비한 몸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중간계에서 <중간계
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
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면, 그 몸이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만들 수 있는 투명하게 각성된 몸으로 즉
시 변형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한 진화가 이렇게 엄청나게 가속
되는 이유는, 중간계 상태의 몸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유연성과
개방성 때문이다.
어머니 실재 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궁극적인 실재 즉 근원
적인 투명한 빛을 가리킨다. 이 궁극적인 실재가 만물의 모체이
다. 그래서 어머니 라고 한다. 자식 실재 는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투명한 빛을 말한다. 이 빛은 인간의 개념적인 지식에 가
려 희미하게 밖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주관과 객관을 구별하는
이원성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상태의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몸
을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 이라고 한다. 이 몸은 투명한 어
머니 빛과 하나 될 때 완전히 투명해진다. 투명한 빛을 인식하
는 아버지 로서의 신비한 몸과 어머니 로서의 투명한 빛이 결
합할 때 탄트라 요가 최고 단계인 통합이 이루어진다. 이 통합
이 마하무드라이자 위대한 완성이며,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
지이다.
두 번째 중간계 라고 부르는 상태가 정신적인 몸[心體] 앞에
나타날 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의식은 그대가 말하는 것
을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 이
가르침을 읽어 주면 효과가 있다. 아직은 까르마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방향을 바꾸는데 큰 어려움
이 없다. 첫 단계 중간계에서는 근원적인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할지라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인식하여 절대 자유
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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