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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법률이란 붕대와 흡사한 데가 있다. 어느 나라의 왕이 상처입은 자기 아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면서 아들아 이 붕대를 감고 있는 동안은 먹거나 달리거나 물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붕대를 풀면 상처는 더 심해진다 라고 일렀다. 인간도 똑같은 것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나쁜것을 바라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 법률을 간직하고 있는 한 성질이 나빠지는 일은 없다. 탈무드 중.

솔로몬 탈무드 2020.09.27

하나의 진정한 결혼을 만나게 되는 일은...

그것은 매우 드문 일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산다. 이를 기억하라. 그들은 혼자살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함께 사는 이유이다. 혼자 사는 것은 불편하고 비경제적이며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산다. 그 이유는 부정적이다. 한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항상 결혼을 반대해 왔다.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는가? 그는 말했다 .겨울이 오고 있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번 겨울은 매우 추울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앙 난방은 내 능력에 닿지를 않고 아내를 얻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이것이 곧 그의 논리이다. 그대는 어떤 사람과 함께 사는것이 안락하고 편리하고 경제적이고 더 싸게 먹히기 때문에 함께 산다. 혼자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

장자(莊子) 2020.09.27

스스로에게 쏘아대는 화살.

한밤중에 어두운 방을 지나가다가 의자에 발가락을 찧었다. 발가락의 아픔이라는 첫번째 화살이 지나가자 마자 두번째 화살인 분노가 엄습한다. 누가 빌어먹을 놈의 의자를 옮겨 놓은거야? 사랑하는 이의 다정한 보살핌을 원하는데 그가 무정하다면 자연스러운 마음의 상처에 더하여 거부당했다는 괴로움에 시달리는데 이는 어린시절 무시당했던 경험의 결과이다. 연관된 신경망의 작용에 의해 두번째 화살은 이어지는 화살들을 쏘아대곤 한다. 의자를 옮겨놓은 사람에게 화를 낸 자신에게 죄책감은 느끼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받은 상처로 슬픔에 잠기는 것이다. 관계에서 두번째 화살은 악순환을 낳는다. 우리의 두번째 화살은 다른 이들의 반응을 초래하여 그들이 우리에게 쏘아대는 두번째 화살을 야기하고 결국 끝없는 악순환이 시작 되는 것이다...

우정 속에서는..

우정속에서는 상대방은 중요하며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너이다. 상대방은 스스로 하나의 궁극이다. 그대는 그를 개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어떻게 그대가 사람을 개조시킬 수 있을까 이 얼마나 큰 어리석음인가? 사람은 사물이 아니다. 사람은 너무나 크고 광활한 것이어서 어떤 이론도 그보다 중요할 수가 없다. 성경도 사람보다 중여하지 않으며 바가바드 기타도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삶의 영광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대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개조 시킬 수는 없다. 그대가 개조하려 한다면 그대는 곧 조작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때 사람은 수단이 되고 그대는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는 그대의 나가 상대방인 너에게 말할 때 너를 사랑하고 있을 때 그 뒤엔 어떤 이념도 숨겨져 있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

장자(莊子) 2020.09.27

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

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 그대는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대는 눈앞을 떠 다니는 사념들 없이 볼 수 있다. 결론내림 없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결론내림 없이 볼 때 그대의 시야는 넓어지고 한정됨이 없다. 힌두교도는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이해 하지는 못한다. 사실 그는 성경을 전혀 읽지 않으며 또 들을 수도 없다. 기독교인이 바가바드기타를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낯선 국외자일 뿐이다. 그는 결코 깊은 존재를 통찰하지 못한다. 그는 결코 내면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다. 그는 그것의 주위를 맴돌 뿐이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실하다고 믿고 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신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장자(莊子) 2020.09.26

이론과 철학들을 내던질 수는 있다.

그러나 우정은 던져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대가 우정속에 있을 때 대화는 가능해진다. 그 대화 속에서 그대는 듣는다. 만일 말해야 한다고 해도 그대는 상대방을 반박하기 위해 말하지 않는다. 그대는 다만 찿기 위해서 탐구하기 위해서 말한다. 그대는 이미 도달한 어떤 결론 없이 말한다. 그대는 무엇인가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대는 철학에서가 아니라 순수에서 말한다. 철학은 전혀 순수함이 없다. 그것은 교활하다. 그것은 마음이 고안해 낸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거기 세 친구가 삶을 논의하고 있었다. 친구사에는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우정이나 사랑이나 존경심 믿음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였다. 그대가 스승에게로 가는데 그 때 그대의 배가 그대의 관..

장자(莊子) 2020.09.25

삶을 논하고 있는 세 벗이 있었다.

먼저 이해해야 할것은 오로지 친구들만이 삶을 토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이 적대적이 될 때 하나의 논쟁이 될 때 그때 대화는 깨어진다. 삶은 그러한 방법으로는 토론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친구들만이 토롤할 수 있다. 그때 토론은 논쟁이 아니며 대화가 되기 때문이다. 논쟁과 토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논쟁할 때 그대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다. 비록 그대가 듣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들음이다. 그대는 진정으로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단지 그대의 논쟁을 준비히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반박할 준비를 하고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단지 그대가 되받아 논쟁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이미 그대 속에 편견을 지니고 있다...

장자(莊子) 2020.09.24

진리.

찿음은 항상 오류에 도달하며 오직 찿지 않는 마음만이 진리를 알 수 있다. 찿을 때 마다 그대는 놓쳐왔다. 찿음은 항상 미래로만 움직이며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없다. 어떻게 지금 여기를 찿을 수 있는가? 그대는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찿음은 욕망이다. 미래가 나타나고 시간이 개입된다. 그 순간 지금 여기는 사라진다. 진리는 지금 여기이다. 오쇼라즈니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