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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극이 그저 하나의 과정에 대한.

우리는 대극이 그저 하나의 과정에 대한 두개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서로 투쟁하는 두개의 다른 과정이 존재한다고 상상하게 된다. 회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편견을 떨쳐버릴 수 없는 미성숙한 마음은 주체/객체 시간/공간 정신/물질 자유/필연 자유의지/필연 이라는 이완성의 올가미 속에서 발버둥 쳐야하는 저주에 사로잡힌다. 하나뿐이어야 하는 진실이 모순에 시달린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하나의 세계로 부터 두개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무런 경계도 없는 자연의 실재 영토를 놓고 경계가 완비된 관습적인 지돋를 만들어 낸 다음 그 둘을 철저히 혼돈하고 있다는 데 있다. 코르지브스키와 일반 의미론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단어 상징 기호 사고..

인문학 강좌 2020.10.24

경계라는 환상.

우리는 해안선 숲의 윤곽 지평선 바위나 피부 등과 같은 자연의 선을 따르거나 또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의 선(관념이나 개념들) 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과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우주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류하고 범주를 나눈다. 우리는 안과 밖 바위와 바위 아닌 것 줄거운 것과 즐거움이 아닌 것 큰것과 큰것이 아닌것 좋은 것과 좋은것이 아닌 것의 차이점을 인식하도록 배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선은 경계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양극의 차이는 명백하게 드러남 으로써 쉽게 인식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일체성은 망각하기 십상이다.이런 오류는 우리가 그 범주의 안과 밖에다 이름을 붙이고 단어나 상징을 부여해 감에 따라 가중된다. 왜냐하면 동일한 범주의 안쪽에 적용하는 빛 위 즐거움과 같은 단어는 그 바깥에 적용되..

인문학 강좌 2020.10.23

우리가 자연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선은.

우리가 자연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선은 단지 대국을 구분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없는 일체로써 둘을 함께 묶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은 경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모든 논리적인 것이든 하나의 선은 단지 나누고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또한 묶고 결합시킨다. 반면에 경계는 순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경계는 실은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척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실 세계에는 선은 있지만 실질적인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하는 선이라도 우리가 그 선의 양편이 분리되어 있고 서로 무관하다고 상상할 경우 즉 대립된 둘 사이의 외적 차이만 인정하고 내적 일체성을 무시할 경우에는 그것은 환상속의 경계가 되고 만다. 안쪽은 바깓쪽과 공존한다는 점을 ..

인문학 강좌 2020.10.22

우리는 경계의 마술.

우리는 경계의 마술 즉 아담이 지은 죄의 주술에 걸려 그 경계선 자체의 본질을 철저히 망각해버렸다. 어떤 유형의 경계선도 오직 지도 제작자의 상상 속에서만 발견될 뿐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발견 되지 않는다. 물론 자연계에도 육지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사이의 해안선처럼 여러 종류의 선(lines)이 존재한다. 실재로 자연에는 온갖 종류의 산과 면이 존재한다. 나뭇잎의 테두리와 유기체의 피부 지평선 나무의 나이테 호수의 가장자리 빛과 그림자 그리고 모든 대상은 그 배경을 구분짓는 윤곽이 존재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예컨데 육지와 바다 사이의 해안선과 같은 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단순히 육지와 물의 분리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앨런 왓츠가 자주 지적했던 것 처럼 소위 나누는 것들은 동시에 ..

인문학 강좌 2020.10.20

세계를 분리된 대극으로 볼때.

세계를 분린된 대극으로 볼 때 삶이 왜 그토록 불만스러운 것이 되는지 왜 진보가 성장이 아니라 암적인 것이 되는지를 이젠 아마도 이해할 것이다. 대립하는 양극을 떼어 놓으려고 애쓰면서 소위 고통없는 쾌락 죽음없는 생명 악없는 선 따위의 긍정적이라고 판단한 것들에만 집착할 때 우리는 실체가 없는 유령을 쫒는 꼴이 되고 만다 이것은 골없는 마루 파는 자 없는 사는자 오른쪽 없는 왼쪽 출구없는 입구만의 세계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가 너무나 고상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져 환상이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성립되지 않는 난센스라고 지적했 던 것이다. 질량과 에너지 주체와 객체 삶과 죽음 과 같은 모든 대극은 결코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서로에게 의지하..

인문학 강좌 2020.10.19

대극의 내적 일체성.

대극의 내적 일체성을 게슈탈트 지각이론 보다 확연하게 설명헤주는 틀도 없을 것이다 게슈탈트에 따르면 우리는 대비되는 배경과의 관계없이는 어떤 대상도 어떤 사건도 어떤 형태도 결코 인식할 수 없다. 예컨데 우리가 빛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재로는 어두운 배경 위로 부각되는 밝은 현상이다. 깜깜한 밤중에 하늘을 보고 밝게 빛나는 별을 지각할 때 내가 실재로 보고 있는 것 내 눈이 실재로 받아 들이는 것은 분리된 별이 아니라 시야 전체 또는 밝은 별 + 어두운 배경이라는 게슈탈트이다. 밝은 별과 어두운 배경 사이의 대비가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도 절대로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빛과 어둠은 단일한 감각적 게슈탈트의 두가지 상보적 측면이다. 마찬가지로 정지와 관련시키지..

인문학 강좌 2020.10.18

모든 곤경의 뿌리는......

모든 곤경의 뿌리는 대극을 화해 불가능한 것으로 서로 철저하게 분리된 것으로 보는 우리의 경향에 있다. 예컨데 우리는 사고 파는 것과 같은 가장 단순한 대극조차 서로 분리된 두 개의 다른 사건(event)으로 본다. 물론 사는 행위와 파는 행위는 어떤 점에선 다른것이긴 하다. 하지 그 둘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결코 분리할 수 없는것이라는 사실이 중요 하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살 때는 언제나 누군가가 다른 무언가를 판다. 즉 사는 행위와 파는 행위는 단지 한 사건의 양극 즉 단일한 사건을 나타내는 사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대극은 암묵적인 동일성을 공유하고 있다. 양극의 차이점이 아무리 생생 하더라도 그 양극들은 어느쪽도 다른 다른 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인문학 강좌 2020.10.15

한쌍의 대극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한쌍의 대극이 있다면 부정적이고 원치않는 한쪽을 근절할 때라야 비로소 삶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고 상상한다. 만일 고통 죽음 악 고뇌 질병을 정복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선 생명 기쁨 건강이 충만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삶일 것이다. 실제로 그곳이야 말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천국일 것이다. 이처럼 천국은 모든 대극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한쌍의 대립중 좋은쪽만을 전부 모아놓은 곳은 의미하게 되었다. 반면 지옥은 고통 고뇌 불안 질병 등 모든 부정적이 쪽을 모아놓은 곳을 의미하게 되었다. 대립하는 것을 분리시켜 놓고 긍정적인 한쪽에만 잡착하고 달려드는 식의 목표는 진보적인 서구 문명 종교 과학 의학 산업의 독특한 특징처럼 보인다. 결국 진보란 단순히 부정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긍정..

인문학 강좌 202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