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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옛날에 세 자매를 가진 아버지가 있었다. 그 딸들은 모두 미인들이였으나 저마다 한가지씩 결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 아이는 게르름뱅이이고 한 사이는 도벽이 있었으며 한 아이는 남을 중상하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아들이 셋이 있는 어떤 사나이가 그 딸들을 며느리고 달라고 제의해 왔다. 딸을 가진 아버지가 딸들의 결점을 숨김 없이 말하자 시아버지 될 사람은 그것은 제가 책임지고 고쳐 나가겠노라고 말했다. 시아버지 되는 사람은 게으름뱅이 며느리를 위해서 많은 하인을 고용했다. 또 도벽이 있는 며느리를 위해서는 커다란 창고의 열쇠를 맡기고 무엇이나 꺼내어 가지라고 말했다. 세째로 남을 중상하기를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해서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서 오늘은 무엇인가 남을 헐뜯는 일이 없느냐고 하루도 거스르지 않..

솔로몬 탈무드 2020.09.16

그릇.

대단힌 총명하지만 못생긴 랍비가 로마황제의 공주를 만났다. 공주는 그렇듯 뛰어난 총명이 이렇게 지저분한 그릇에 담겨 있다니! 하고 말했다. 랍비는 왕궁에 술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공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떤 그릇에 담겨 있나요? 하고 다시 물었다. 공주는 보통 볼 수 있는 항아리나 물주전자에 들어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랍비는 놀라는 시늉을 하며 적어도 로마의 공주님이라면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도 많을텐데 어째서 그렇게 보잘것 항아리를 사용하신단 말씀 입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공주는 지금까지 금은 그릇에 담겨 있던 물을 보잘 것 없는 그릇으로 옮기고 값싼 항아리에 담겨있던 술을 금은 그릇으로 옮겼다. 술맛은 금방 변해버렸다. 왕은 노하여 누가 이곳에 술을 담았는가?하고 물었다. 공주는 그렇..

솔로몬 탈무드 2020.09.14

요술사과.

임금님에게 외동딸이 있었다. 그 공주가 우연히 중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였다. 의사는 신약(神藥)을 쓰지 않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임금은 딸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고 임금자리고 물려 주겠다고 포고하였다. 아주 먼 고을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이 망원경으로 그 포고문을 보았다. 삼형제는 그 공주를 동정하여 어떻게든 공주의 병을 고쳐 주자고 의논했다. 삼형제 중 한사람은 요술 담요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사람은 요술 사과를 가지고 있었다. 요술 사과는 먹으면 어떤 병이든 낮게 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사람은 요술담요를 타고 왕궁으로 찿아갔다. 공주에게 사과를 먹였더니 그 병이 깨끗이 나아 모두 매우 기뻐했다. 임금님을 큰 잔치를 베풀고 새로운 왕위..

솔로몬 탈무드 2020.09.11

훈언3장.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너희를 현혹하는 자들이 말하길 보라 천국이 하늘에 있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앞서 갈 것이요 만약 그들이 그것은 바다속에 있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앞서 갈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네 안과 밖에 있느니라 너희가 너희 자신 스스로를 알 때 비로소 참된 자신을 알게 되며 너희가 살아있는 아버지의 자식임을 알게 될지니라 그러나 만일 너희 자신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궁핍에 있을 것이요 너희가 궁핍이라. (이것은 불교의 불성내재론(佛性內在論)이다. jesus said if those who draw you say to you, lo the kingdom is in heaven, then the birds of heaven will precede you, if dhe..

도마복음 강의 2020.09.08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매우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어디서 당신은 왔는가? 무(無)다 어디로 당신은 향해 가고 있는가?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 무다 무에서 무로 그리고 두개의 무 사이에서 실존이 나타난다 실존이라는 강은 두개의 무의 뚝 사이를 흐르는 것이다. 실존은 아름답다 삶은 좋다 그러나 죽음 역시 좋다 그도 그럴것이 삶은 죽음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당신은 죽음은 삶에 대립되는 것이고 그것은 삶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틀린다. 죽음 없이는 삶은 일순간도 존재하지 못한다 그것은 삶을 지탱해 준다. 그것은 바로 삶의 기반인 것이다. 당신이 살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두개의 별개의 것이 아니다 두개의 날개이다 같은 현상의 ..

노자(老子) 2020.09.08

실존의 가장 깊은 중핵은 비실존이다.

실존의 가장 깊은 중핵은 비실존이다. 있는것(有)의 기반은 무(無)이다. 그리고 내가 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사물이 없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형태는 무형이라는 토대위에 존재한다 형내는 무형에서 나타나온다 마치 파도가 바다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무형속으로 녹아 없어져 간다. 이름은 무형에서 솟아 나와서 근원으로 가라앉았다가 되돌아 와서 다시 무명이 된다. 삶은 죽음에서 솟아 올라 다시 죽음으로 이행한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 끼리는 반대가 아니라 그들은 상호보완적이라는 사실이다. 죽음은 삶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비존재는 존재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비실존은 실존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든 이해를 초월한 같은 현상의 두가지 대극에 지나..

노자(老子) 2020.09.07

물러남.

오늘의 양식은 얻어졌다 이번에는 물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물러나야 하는지를 모른다. 당신은 꿈속에서 까지 생계를 꾸린다 당신은 누워서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내일이 올지 안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실재로는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오늘인 것이다. 당신의 죽음이 일체의 미래를 파괴한다는 것을 모른 채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명헤 지도록 하라 순간에 머무르도록 하라. 그것은 가능한 총체롤 살아보라.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아무런 죽음도 모를 것이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은 아무런 죽음도 모른다. 그는 죽지 않게 한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내일의 일이기 때문이다. 삶은 오늘의 일이다. 죽음은 미래에 속해있다. 이것이 물러난다고 하는 것의 의미인 것..

노자(老子) 2020.09.07

삶은 설명이 없다.

삶에 대한 첫번째의 것은 그것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삶은 그곳에 그 절대적인 영광속에 있다. 그러나 거기 설명은 없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처럼 존재한다. 그대가 설명을 꾀하면 그때 그대는 삶을 놓쳐 버릴 것이다. 삶은 설명되어질 수가 없다. 다만 그대는 그대의 설명을 통해 눈멀게 될 것이다. 철학은 삶의 적이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유해한 일은 고정되고 인간에 있어서 설명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그대가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은 그대를 떠나 있고 그대는 이미 죽어 있다. 이는 하나의 역설처럼 보일 것이다. 죽음은 설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설명되어 질 수가 없다. 죽음은 끝이나 완성된 무엇이고 삶은 언제나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그 여행길에 있다. 그러나..

장자(莊子) 2020.09.06

크리슈나의 삶을 보라.

장자가 그에 대하여 알았더라면 매우 아르다웠을 것이다. 크리슈나의 삶은 장난이다. 붓다 마하비라 예수는 어쩼던 약간은 진지해 보인다. 마치 무엇인가가 성취 되어야 했던 것처럼 모크샤나 니르바나 무욕의 경지 등 ... 그러나 크리슈나에게는 절대 목적이 없다. 그는 피리부는 사람 이였다. 재미로 살며 소녀들과 춤을 추며 즐기고 노래부른다. 그에게는 이르러야 할 곳이 없다. 모든것이 이곳에 있다. 그러니 왜 결과에 대해 고민하겠는가? 모든것이 지금 유용하다. 왜 그것을 즐기지 않겠는가? 재미가 완전한 이의 표시라면 크리슈나는 완전한 사람이다. 인도에서는 크리슈나의 삶을 카리트라 (chartra)그의 인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크리류나의 릴라(leela) 그의 놀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격이 아니..

라마크리슈나 202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