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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사랑.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였는가? 그들은 수만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고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히 그토록 여러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

천사람 중의 한사람. 루디야드 카플링.

천 사람 중의 한 사람은 형제보다 더 가까이 네 곁에 머물 것이다 생의 절반을 바쳐서라도 그런 사람을 찿을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너를 발견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구백아흔아홉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대로 너를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그 첫번째 사람은 언제까지나 너의 친구로 남으리라 세상 모두가 너에게 등을 돌릴 지라도 그 만남은 목적이나 겉으로 내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너를 위한 진정한 만남이 되리라 천 사람 중의 구백아흔아홉 사람은 떠나갈 것이다 너의 표정과 행동에 따라 또는 네가 무엇을 이루는가에 따라 그러나 네가 그 사람을 발견하고 그가 너를 발견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문제가 아니리라 그 첫번째 사람이 언제나 너와 함께 물 위를 헤엄치고 물 속으로도 기꺼이 가라 앉을 것이기에 때로 그가 너의 지..

사람과 사람의 거리. 작자미상 암브로시아 제공.

나무 한그루의 가려진 부피와 드러난 부분이 서로 다를 듯 맛먹을 적에 내가 네게로 갔다 오는 거리와 네가 내게로 왔다 가는 거리는 같을 듯 같지 않다. 하늘 만한 바다 넓이와 바다만큼 깊은 하늘 빛이 나란히 문 안에 들어서면 서로의 바람은 곧잘 눈이 맞는다 그러나 흔히는 내가 너를 향했다가 돌아오는 시간과 네가 내게 머물렀다 따나가는 시간이 조금씩 비켜가는 탓으로 우리는 때없이 송두리째 흔들리곤 한다. 꽃을 짖이여가며 얻은 진한 진액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찿아보지 못하듯 좋하는 사람 곁에 혹처럼 들러붙어 있어도 그 사람과의 거리는 가까위지지 않는다 꽃과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눈앞에 있을 때 굳이 멀리 두고 보듯 보아야 하고 멀리 있을 때 애써 눈앞에 두고 보듯 보아야 한다. 누구나 날때와 죽을 때를 달리..

별들의 침묵. 데이비드 웨이고너.

한 백인 인류학자가 어느날 밤 칼라하리 사막에서 부시맨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은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시맨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가 농담을 하고 있거나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여기면서 농사를 지은적도 없고 사냥할 도구도 변변치 않으며 평생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살아온 두 명의 키작은 부시맨이 그 인류학자를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으로 데려가 밤하늘 아래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런 다음 한사람이 속삭이며 물었다 이제는 별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느냐고 그는 의심스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부시맨들은 그를 마치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모달불가로 데려 간 뒤 고개를 저으..

생이 끝났을 때. 메리 울리버.

죽음이 찿아 올 때 가을의 배고픈 곰처럼 죽음이 찿아와 지갑에서 반짝이는 동전들을 꺼내 나를 사고 그 지갑을 닫을 때 나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에 차서 그 문으로 들어 가리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 어둠의 오두막은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을 형제자매처럼 바라 보리라 각각의 생명을 하나의 꽃처럼 들에 핀 야생화 처럼 모두 같으면서 서로 다른 생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였다고 단지 이 세상을 방문한 것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 메리 울리버.

침묵의 소리.

존재의 언어로 만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나는 그대를 정의하거나 분류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겉으로만 알고 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유의 욕망을 넘어 그대를 만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허용해 준다 함께 흘러가거나 홀로 머물거나 자유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대를 느낄 수 있으므로. 클라크 무스타카스.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론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옆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금 간 꽃병. 쉴리 프뤼돔.

이 마편초 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가벼운 상처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먹어 들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맑은 물은 방울방울 새어 나오고 꽃들의 향기는 말라 들었다. 손대지 말라 금이 갔으니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마음을 스쳐 상처를 준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말라 죽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작고도 깊은 상처에 혼자 흐느껴 운다 금이 갔으니 손대지 말라. 쉴리 프뤼돔.

논리라는 것은 극단의 바로 극까지 달린다.

삶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이 논리가 삶을 놓치는 연유이다 논리에는 결론에 도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결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삶에는 아무 결론도 없다 삶은 아무런 결론도 없이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앞으로 나아간다 거기에는 어떤 시작도 없고 그리고 어떤 끝도 없다. 삶은 항상 한 가운데(중용)에 있다. 삶은 항상 현재에 있다. 삶은 하나의 진행 과정인 것이다 논리적인 마음이 점차 죽은 것 처럼 되어가는 것은 계략이다 논리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멸망시키는 것인 그러한 계략이다 결론을 내리지 말라 결론없이 살아가 보라 그것이야 말로 유일한 생활태도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당신은 중용으로써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용이야 말로 균형인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노자(老子) 202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