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분린된 대극으로 볼 때 삶이 왜 그토록
불만스러운 것이 되는지 왜 진보가 성장이 아니라
암적인 것이 되는지를 이젠 아마도 이해할 것이다.
대립하는 양극을 떼어 놓으려고 애쓰면서 소위
고통없는 쾌락 죽음없는 생명 악없는 선 따위의
긍정적이라고 판단한 것들에만 집착할 때
우리는 실체가 없는 유령을 쫒는 꼴이 되고 만다
이것은 골없는 마루 파는 자 없는 사는자 오른쪽
없는 왼쪽 출구없는 입구만의 세계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가 너무나
고상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져 환상이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성립되지 않는 난센스라고 지적했
던 것이다. 질량과 에너지 주체와 객체 삶과 죽음
과 같은 모든 대극은 결코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여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
이는 대극들 사이에 경계선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리된 대극이 존재하는 것
처럼 보이게끔 하는 것은 경계 그 자체라는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쉽게 말하면 궁극의 실재는 대극이 합일된
상태이다 라는 말은 실재로는 궁극의 실재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 어디에도
경계가 없다는 뜻이다.
캔 월버의 무경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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