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덕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덕이 있는 것이다.
덕이 낮은 사람은 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 까닭에 덕이 없는 것이다. 진실로 덕이 있는
사람은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덕이 낮은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해도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한다. 진실로 어진 사람은
행동을 함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옳은 사람은 행동을 함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진실로 예의가 바른 사람은 행동을 함에 있어서
이에 대한 응답이 없으면 팔을 잡고 강제로 끌어
당기면서 예의를 지키게 한다.
그러므로 무위자연의 도가 없어진 뒤에 덕이
나타나고 덕이 없어진 뒤에 인이 나타나고
인이 없어진 뒤에 의가 나타나고 의가 없어진 뒤에
예의가 나타난다.대체 예의라는 것은 마음속의
성실성이 희박해지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고
또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첫걸음이 된다.
이른바 남보다 먼져 깨닫는다는 것은 무위자연의
도를 인위적으로 허식하는 자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첫 출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 큰 사람은 자연적인 질박한
생활을 하고 인위적인 허식에 찬 생활을 하지
않으며 실속을 취하고 헛되이 화려한 것은 버린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화려하고 허황된
생활을 버리고 질박하고 후실한 도의 생활을 취한다.
노자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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