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 17

중용을 지키는 것이 자장 큰 덕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중용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본적이 없다. 중용과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왜 그런가? 중용이 가장 큰 미덕인가? 중용은 그대의 에고를 파괴시키기 때문이다.에고 때문에 그대는 신을 놓친다. 평범할 때 정 중앙에 있을 때 무엇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적당하게 섹스를 했다고 자랑할 수 있겠 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섹스에 탐닉하는 사람은 육십의 나이에도 하루에 세번씩 했다고 자랑한다. 금욕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순결하며 누구와도 한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중간상태에 있을 때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중간에서는 자랑 할것이 없다. 그리고 주장하고 내세울것이 없을 때 에고는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 평범해 지는 것 중용을 지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덕이다. 평범해 지는것이 가..

모든 붓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은 사자의 표효와 같다. 그들은 그대를 보고 웃은 게 아니라 하나의 농담과도 같은 이 우주 전체를 보고 웃었다. 그들은 꿈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욕망에 중독되어 있었으며 그 욕망을 통해 존재계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존재계가 이니였다. 그들 자신의 꿈을 투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대는 존재계를 스크린삼아 그 위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다. 그대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실재하고 있는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마음은 모든것에 대한 설명을 가지고 있다. 의심이 떠 오르는 즉시 마음은 설명을 지시한다. 마음은 이론 철학 사상등을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위안을 받기 위해서다. 모든 철학은 그대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것이 옳게 보인다. 그러나 ..

완전한 각성으로 행동하고 말하라.

그러면 그대 안에 엄중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깨어있음 자체가 그대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때 그대는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대 자신을 통제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절대로 그런 말이 아니다. 통제는 깨어있음이 없을 때를 대신하는 빈약한 대용품이다. 그들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만일 그대가 깨어있다면 분노를 통제할 필요가 없다. 깨어있음 안에서는 분노가 일어날 수 없다. 분노와 깨어있음은 공존할 수 없다. 깨어있음 안에서는 질투가 일어나지 않는다. 깨어있음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간단하게 사라진다. 부정적인 모든것이 사라진다. 이것은 빛에 비유할 수 있다. 집안에 불을 밝히면 어둠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어둠은 간단하게 사라진다. 집안에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다면 왜 더듬거리고 걸려 넘어지겠는가? 왜 벽에..

사랑을 통해 비상할 때.

그 사랑은 아름답다. 반면 사랑을 통해 추락 할 때 그 사랑은 더럽고 추하다. 사랑에 빠졌 을 때 그대는 이 사랑이 독약이라는 것을 곧 깨달을 것이다. 그 사랑은 구속이 된다. 그대는 사랑의 올가미에 걸렸다. 자유가 파괴되고 날개가 짤렸다.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에 빠짐으로써 그대는 소유물이 된다. 그대는 상대방을 소유하는 동시에 상대방이 그대를 소유하도록 허용한다. 그대는 물건이 된다. 그리고 상대방을 물건 으로 전락시키려고 애쓴다. 결혼한 부부들을 보라. 그들은 물건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서로를 소유하려고 한다. 오직 물건만이 소유될 수 있다. 인간을 소유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떻게 인간을 소유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가? 인간을 소유물..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즉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에도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잠잘 때 그대는 잠잔다. 그러나 깨어있을 때에도 그대는 잠잔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붓다 예수 클레이토스 그들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깨어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깊은 곳에서 그대는 계속 잠자고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그대는 내면에서 꿈을 꾸고 있다. 마음속에 수많은 상념이 지나가는데 그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그대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대는 몽유병환자 처럼 행동한다. 몽유병 환자들을 본적이 있는가? 그는 잠자면서도 이일 저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이것이 몽유병이라고 불리..

불화속의 조화 대립속의 합일이 모든 신비의 열쇠다.

만물은 변화속에서 안식을 발견하나니 자신과 불화를 이루는 것이 어떻게 자신과 일치되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악마는 신과 일치하고 신은 악마와 일치한다. 이것이 악마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수금(竪䔷)과 할의 경우처럼 구부러진 등에도 조화는 있다. 음악가는 활과 수금으로 연주를 한다. 대립은 표면적인 현상이다. 표면에는 마찰과 투쟁 불화가 있지만 그로부터 아름다운 음악이 나온다. 대립은 화합을 가져오고 불화에서 아름다운 조화가 비롯되나니... 활의 이름은 삶이지만 그 일은 죽음이다. 죽음이 삶의 일이다. 삶의 최종적인 결과가 죽음이다. 죽음과 삶은 둘이 아니다. 활의 이름은 삶이지만 그 일은 죽음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수금과 같다. 활의 이름이 삶이라면 수금의 이름..

미움은 사랑의 적이 아니다.

미움은 사랑의 적이 아니다. 미움은 사랑을 아름답게 마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감미료와 같다. 미움은 사랑의 배경이다. 이때 그대는 분노를 통해 자비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분노는 자비와 반대되지 않는다.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의미가 그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는 적이 아니다. 그들은 친구다 그들을 이용할 수 있다. 숨은 조화속에서 그들은 하나가 된다. 분노라는 원수가 있다. 그것을 이용하라. 그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라. 미움을 통해 그대의 사랑을 더 깊은 차원으로 성장시켜라. 미움을 토양으로 삼아라. 미움은 사랑의 토양이다. 이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숨은 조화다. 원수를 사랑하라 대립되는 것을 이용하라. 대리되는 것은 적이 아니다. 그것은 훌륭한 배경이다. 대립은 화합을 가져오고 불화에서 ..

자이나 교인들 또한 문을 닫아 버렸다.

그들은 마하비라가 마지막 예언자라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의 티르탕카(자이나교에서 개달은 스승을 일컷는 말. 여울을 만드는 자 라는 뜻이다. 마하비라 이전에 23명의 전법자가 있었다고 하며 마하비라는 24조다.) 는 없다. 이슬람 교인들은 모하메드를 마지막 에언자라고 하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신의 독생자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아들은 없다. 모든 문이 닫혔다. 이렇게 도덕주의자들이 항삼 문을 닫아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안전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예언자가 오면 순간에서 순간을 사는 예언자가 오면 모든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이다. 그대는 어느정도 안정되어 있다. 그대는 규칙들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대는 분명히 조화를 얻었다. 그런데 다시 예언자가 오면 그는 모든것을 혼란시킬 ..

그대는 끊임없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대에게 일관성을 기대한다. 그리고 숨은 조화는 사회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일부이지 사회에 속하지 않는다. 사회는 인위적인 현상이다. 사회는 모든것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을 근거로 한다. 사회는 부동의 도덕과 율법을 만들었다. 마치 모든것이 변하지 않는 것 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똑같은 도덕율이 수천년 동안 지속된다. 모든 것이 변하는데 도덕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모든것이 끊임 없이 변화하는데 소위 도덕주의자들은 계속 똑같은 설교를 늘어 놓는다. 그들의 설교는 시대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일관성을 맹목적으로 유지한다. 이렇게 시대와 어긋나는 일이 계속된다. 모하메드 시대에 아라비아 지역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네배나 더 많았다. 전사였던 아라비아인들은 끊임 없이..

종교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은 표면적으로만 조화롭다. 그러나 종교적인 사람은 중심에서 조화롭다. 종교적인 사람은 모순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도덕적인 사람은 항상 일관된다. 도덕적인 사람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종교적인 사람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예수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가까운 제자들 조차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가 어떻게 행동할 지 점칠 수 없었다. 예수라는 사람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한편 사원에 들어가 채찍을 휘두르며 환전상들을 내쫓았다. 그는 자비에 대해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사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형명적이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그는 아주 일관되지 못한 것 처럼 보인다. 러셀은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 라는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