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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노자를 찿아가 물었다.

도덕에 대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한 품격을 배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는 도덕가였다. 그리고 공자는 만일 당신이 선한 품격을 배양할 수가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성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자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만일 당신이 부도덕하다면 그때 비로소 도덕이라는 문제가 생겨난다. 그리고 만일 당신에게 아무런 품격도 없다면 그때 비로소 당신은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품격이 있는 사람은 원래 품격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것이다. 도덕이 있는 사람은 도덕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배양하려고 하지 말라 다만 자연으로 있으면 된다. 노자 영원한 도를 말하다 중.

노자(老子) 2020.05.04

말로 할 수 있는 도는 절대적인 도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고 알았을 때 거기에서 추함이 생겨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을 선이라고 알았을 때 거기에서 악이 생겨난다. 결국 있음과 없음은 서로 보완하여 성장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보완하여 완성되고 길고 짧음은 서로 보완하여 대조를 이루고 음정과 목소리는 서로 보완하여 하모니를 만들고 앞과 뒤는 서로 보완하여 연결된다. 이리하여 현자는 행하지 않고 사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설명한다 만물이 제각각 생겨나고 그러면서도 현자는 그것들로부터 떠나지 않는다 현자는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그러면서도 그것들을 자기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현자는 행하고 그러면서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룩하고 그러면서도 무엇하나 주장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공적을 주장하지 않는 탓으로 그 공적을 현자한테..

노자(老子) 2020.05.04

내면의 체험에 관한 지혜를,

내면의 체험에 관한 지혜를 많은 사람들이 물으려 온다 꿀맛을 본 이는 벙어리가 되고 마는데 어떻게 꿀맛에 대해 애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긁어 모은다. 이는 외부로부터 주워 모은 지식에 불과하다 우리는 사방으로 부터 사물을 지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힌두의 신전에 가면 신상의 주위를 돌게 되는데 이것은 그져 피상적인 의식에 불과하다 외부로부터 아무리 많은 것을 긁어 모은다 하더라도 그런 지식은 내면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신의 고유한 체험과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무엇이든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가 긁어모은 지식은 표피적인 것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다에 가서 파도만 보고 돌아오는 것과 같다 이 진짜 바다의 심원한 보물은 파도속에 감추어져 있다. 바다 표면에..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곧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이 생겨나며 여섯 감각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 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 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같이 하여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생겨난다. 깨달음의 경(pathamabodhisuttam).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기도와 수행에 의존하고 종교와 경전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착하고 스스로 파하고 스스로 통찰하여 자각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 깨어남 깨어있음으로 인해 신과 진리의 삶과 자기 자신과의 포괄적인 상관관계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이며 누구이다를 고집하지 않는것이 상식이자 순리입니다. 불멸의 자각 중.

참된 주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어진 환경을 바꾸는 것 만의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도 능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의 나에게 운명이 있다면 운명을 받아 들이는 것도 능동적 이며 운명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며 바꾸려는 것도 능동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이 모든것이 능동적 으로 보일수가 있는 것은 모든 일과 모든 것이 하나의 뜻이자 하나의 자유의지 즉 나의 뜻과 의지이자 내 마음 먹기로 인해 비추어져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어나는 모든 일과 드러나는 모든 것이 능동적인 이유는 내가 즉 나가 오직 유일한 능동적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 간다고 느끼고 있는 지금의 나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있다면 꿈이 꾸어지고 있는 것이며 그로 인히 겪고있는 모든 일 또..

나는 생각의 주인이다.

너는 생각의 주인입니다.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주인인 나에게 영향을 미칠수가 있으며 어떻게 나 자신으로써의 고요의 정적을 깨트릴 수 있겠습니까?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만 부족 하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하다고 생각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어떻게 생각의 주인을 규정하며 속박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구속이 자유를 속박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자신을 바로아는 것이 참다운 평안이며 참다운 만족이며 행복일 것입니다. 불멸의 자각 중.

깨달은 이를 찿아가 보라.

참다운 지혜를 얻은 이를 찿아가 보라. 그가 말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 그저 깨어 있으라. 그리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 깨달은 존재는 피안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다. 깨달은 이의 참 존재는 말로써 설명할 수가 없다. 깨달은 존재는 꿀을 먹은 벙어리와 같다. 그는 그가 깨달음을 맛보고 미소지을 뿐이다 사트 상(satising (사트(sati)는 진리를 상(sing) 은 모임이나 회합을 뜻함) 이라는 말은 깨달은 이의 발아래 앉아 있는 것 스승의 발아래 앉아 있는 것을 뜻한다. 꿀을 맛본 사랑의 꿀을 맛본 이의 발아래 앉아 있으라. 사랑을 맛본이의 삶은 엑스터시로 넘쳐 흐른다. 삶의 꽃이 만발해 있다. 그 향기에 취해 보라. 그 맛에 빠져보라 그 기쁨속으로 철저히 녹아 들어가라 그가 말하는 것에 매달리지 ..

신의 이름으로 깨어나 황홀경을 노닐며...

신의 기름으로 깨어나 황홀경을 노닐며 신 앞에서 사랑에 빠지고 사랑이 넘쳐 흐르는 흥겨운 잔치 해탈을 집착하는 이는 누구인가? 왕이 됐던 평민이 됐던 머리를 놓은자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에고를 버린자는 엑스터시로 넘쳐 흐른다. 사랑이 자신의 숨구멍 하나를 통하여 펴져 나간다. 깨달음을 집착하는 이는 누구인가?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해탈을 구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해탈을 얻게 해 달라고 열반에 이르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지 않는다. 그는 해탈에 신경쓰는 자는 누구입니까? 저는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라고 기도한다. 신을 향한 참다운 헌신자는 해탈에 대해 묻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참다운 헌신자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한다. 신을 향한 참다운 헌신자는 당신을 보고싶습니다 당신..

위정자는 백성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아야 한다.

성인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마음이 없다. 그리고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 성인의 덕은 선한 사람도 더욱 선하게 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하게 하니 결국 성인의 덕은 참된 선(善)이다. 믿음성 있는 사람도 더욱 신실하게 하고 믿음성 없는 사람도 신실하게 하니 결국 성인의 덕을 참된 믿음(信)이다. 성인이 천하는 다스리는 데는 자기 일 개인의 주장과 견해를 내세우지 않고 다만 온 백성의 마음을 종합하여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 백성들이 다 성인이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는가 그 귀와 눈을 주시하지만 성인은 다만 백성을 무지무욕(無知無欲)케 하며 철모른 어린아이 들과 같게 한다. 가랑이를 벌리고 황새걸음으로 걷는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중.

노자(老子)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