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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언제나 난데없이 일어 난다.

깨달음은 언제나 별안간 일어난다. 그렇다고 깨달음이 아무에게나 별안간 얼어난다는 말이 아니다. 그날 밤 치요노에게 깨달음이 일어났다. 그녀가 해 낸 각고의 수행은 깨달음을 일으킨것이 아니라 어떤 노력을 해도 에고의 나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깨우침을 일으켰다. 치요노는 처절한 절망에 도달했다. 그런 절망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해 보았을 때 찿아온다. 그런 절망이 찿아올 때 희망이 나타난다 그런 절망 속에서 에고는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이다. "나"라고 주장할 자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에고는 그 절정에 도달했을 때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대는 미지근한 에고를 놓을 수 없다. 미지근한 에고는 여전히 꿈을 꾼다. 그래서 미지근한 에고를 놓는 일은 불가능 하다. 그런 에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누가..

마음이 장애이다.

그대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것은 바로 그대 자신의 마음이다. 마음은 끝없이 돌아가는 영화 필름처럼 그대를 둘러싸고 있고 그대는 그 영화에 정신을 빼앗겨 있다. 끝없이 계속되는 환상이 그대를 둘러싸고 있다. 그 영화에 정신이 다 쏠려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계속하여 놓치고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환영같은 것으로써 꿈꾸는 능력 이상의 것이 아니다. 마음은 끝없이 계속되는 온갖 꿈에 불과하다. 과거에 대한 기억의 꿈 미래에 대한 꿈 이상적인 현실에 대한 꿈 거대한 야망과 성취의 꿈들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꿈과 욕망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마음이 거대한 성곽처럼 그대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고기가 바다를 모른채로 물속에서 죽어 사라지듯이 그대 또..

무엇을 먼저 알고 시작하여야 하는가?

첫째: 진리는 존재한다. 진리는 창조하거나 만들어지는게 아니고 멀리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고 바닷물이 물고기를 둘러싸고 있듯이 진리가 그대를 둘러싸고 있다. 고기가 이런것을 알리가 없지만 고기가 바다를 알아 차리면 그 고기는 깨달은 고기가 된다. 고기는 바다는 알지도 못하고 알수도 없다. 왜냐하면 고기는 바닷물 속에서 태어나 늘 바다속에서 살며 바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바다 물결처럼 고기는 바다속에서 일어나 떠도는 파동이다. 바다물결이 바다 표면에 나타났다가 스러지듯이 고기는 바다속에 나타나 바다속을 떠돌다가 사라져가는 하나의 파동이다. 그러나 고기는 마지막까지 결코 알게되지 못할런지 모른다. 대상을 인식하고 알려면 그 대상과의 사이에 거리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

무심(無心).

무엇보다 먼저 당신 마음속으로 깊이 침잠하라 진리는 이미 존재하고 우리는 그 속에 있다 감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새로이 발견할 것도 없다. 필요한 것은 당신이 잊어버렸던 새로운 종류의 각성이다. 진리가 거기 있는데도 당신은 각성하지도 뭇하고 깨어있지도 못하다 눈은 가지고 있는데도 보지는 못하고 있다. 귀는 있는데도 듣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바로 장애가 된다. 무심이야 말로 그곳에 들어가는 문이다. 오쇼의 지혜의 서 중.

각성(覺醒)

나의 강조점은 아티와 전적으로 동일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가지 고민을 안고서 나에게 오지만 나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그대가 화가 나서 그 문제때문에 나에게 온다면 그 화를 각성하라고 나는 말하겠다. 욕심의 문제로 나에게 상의하려 온다면 그 욕심을 각성하라고 말하겠다. 그대가 색욕때문에 온다면 그 욕정을 각성하라고 말해 주겠다. 왜냐하면 각성함으로써 그 뿌리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 뿌리란 무엇인가? 각성하지 못한것이 그 뿌리이다. 오쇼의 지혜의 서 에서.

이 일곱편의 수심요결(修心要訣)은...

이 일곱편의 수심요결은 위대한 스승인 아티샤의 가르침으로써 달을 가리키는 일곱개의 손가락이다 그러나 그 손가락에 사로잡히지도 얽메이지도 말라. 손가락만을 쳐다보아서는 정작 보아야 할 달을 보지 못하게 된다.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그곳을 바라보고 달을 보게 되거든 손가락에는 더 이상 구애받지 말아라. 달을 본 다음에 달을 본 손가락은 더이상 중요한 의미가 없다. 오쇼의 지혜의 서 에서.